「계회입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484
한자 契會立義
영어공식명칭 Gye-Hoeibui-yib-y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583년연표보기 - 「계회입의」 작성
소장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지도보기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정구(鄭逑)

[정의]

한강 정구가 1583년에 성주 회연에서 계를 조직하여 그 운영에 대한 세부 규칙을 기록한 문서.

[개설]

계회는 매월 초하룻날 모여서 성현의 글을 강론하고 행실을 닦는 강회(講會)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계회입의」는 현재 『한강집(寒岡集)』 권9에 수록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그의 나이 41세가 되던 1583년에, 성주(星州) 회연(檜淵)에 백매원(百梅園)을 조성한 뒤 향우(鄕友)들과 자신의 문인들로 이루어진 계회를 조직하여, 그 운영에 대한 세칙과 절차를 만들었는데 그 중 세칙에 대한 것이 바로 이 「계회입의(契會立義)」이다.

[구성/내용]

「계회입의」의 주요 내용은 여씨향약(呂氏鄕約)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 구체적인 사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계원으로 들어오길 희망하는 자는 직월(直月)[조선 시대 향약의 일을 맡아보던 직책. 오늘날의 간사임]에게 알리고, 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사실을 고지하여 반드시 많은 사람이 허락한 후에야 명단에 이름을 쓰고 가입시킨다.’ ‘거리가 30리[약 12㎞] 이내에 있는 자는 매월 1일에 모이고, 30리 밖에 있는 자는 사계절의 첫 달 1일에만 오기로 한다.’ ‘집회일에는 이른 아침에 와야 하며 어린 사람은 존장(尊長)보다 늦어서는 안된다.’ ‘약조의 법칙을 낭독한 다음 주자의 「백록동규(白鹿洞規)」를 강독한다.’ ‘모임을 갖는 날 반드시 그간 한 달 동안 익힌 공부를 서로 살펴본다. 이때 30세 이전인 자는 등을 돌리고 암송하며, 30세 이상은 책을 보고 낭독한다.’ ‘모임이 있는 날 혹 비가 오면 일시 중지하고 날이 갤 때까지 기다린다. 결국 그날 모임을 못하게 되면 직월이 약정(約正)에게 알려 다시 날짜를 정해 모인다.’ 등등 모임의 참여 조건과 운영 규칙을 매우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어 정구가 운영한 계회의 진행 장면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 중기 사족 중심의 향촌 지배 양상과 향약과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존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존장이 향촌의 지도층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계회를 통해 고을 구성원 간 상호 결속을 다지고 사족 중심의 향촌 지배 질서를 도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주 지역의 향풍 진작과 향촌 질서 유지를 위해 시행되었던 향약(鄕約)과 동약(洞約) 관계 자료로는, 정구의 이 「계회입의」 외에도 「사촌동계(沙村洞契)」, 이유(李乳)의 족계(族契), 장현광(張顯光)의 족계, 이도장(李道長)의 「상지향약(上枝鄕約)」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여희림(呂希臨)[1481~1553]으로부터 시작된 성주 지역의 향약은 정구「계회입의」 외에도 「사촌동계」 등과 같은 발전적 형태로 나타났으며, 이어 배정휘(裵正徽)는 회로당(會老堂)에서 향약을 시행하고, 매달 초하루에 강회를 열어 학업을 점검하였으며, 조선 후기 최용한(崔龍翰)은 매월 초하루에 모임이 있을 때 남전향약(藍田鄕約)을 강론하여 권선징악의 도를 행하게 하여 무너진 윤리를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이수용(李秀容)은 여씨향약과 퇴계의 향약조를 본떠 동약의 절목을 만들어 자제들로 하여금 본보기로 삼게 하였으며, 이원홍(李源弘) 역시 동규를 세우고 권선징악을 강조하였고, 최영록(崔永祿)은 『평증손향약(評增損鄕約)』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렇듯 성주 지역의 향풍 진작과 향촌 질서 유지를 위해 시행되었던 향약 관련 자료로서, 그리고 조선 중기 사족 중심의 향촌 지배 양상과 향약과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사례로서 「계회입의」가 지니는 가치는 적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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