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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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玄琪 |
영어공식명칭 | I Hyeong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70년 10월 19일 - 이현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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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7일~3월 28일 - 이현기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소학동에서 30여 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운동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8일 - 이현기 성주 장터에서 홀로 대한 독립 만세 고창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6일 - 이현기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2월 7일 - 이현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이현기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이현기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289 |
거주|이주지 | 이현기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나선로 1003-4[선원리 691] |
활동지 | 이현기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소학리 |
활동지 | 이현기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19년 3월 27일~3월 28일 양일간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소학동에서 30여 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고, 3월 28일 성주읍 장터에서 단독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아버지는 이언회(李彦會),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활동 사항]
이현기(李玄琪)[1870~1945]는 1870년 10월 19일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289번지에서 태어났고, 선남면 선원리 691번지에서 살았다. 1919년 3월 3.1 운동이 발발하여 만세 시위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신문지상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1919년 3월 27일~3월 28일 양일간에 걸쳐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소학동[현 소학리]에서 30여 명의 시위 군중을 규합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고, 3월 28일에는 성주읍 장터에 가서 장터 중앙에서 홀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곧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이현기의 만세 시위는 성주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더욱 북돋웠다. 이뿐만 아니라 1919년 3월 27일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동원동[현 동원리]에서 벌어진 이상해(李相海)의 만세 시위와 함께 성주군 3.1 운동의 발단이 되었다. 즉 1919년 4월 2일 전개된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1919년 4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5년 2월 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