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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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峴洞 |
영어공식명칭 | Sinhyeon-dong |
이칭/별칭 | 새우개,신고개면,신현면,신관동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남 |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 속하는 방산동 ·포동·미산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개설]
신현동은 경기도 시흥시 중서부에 있는 행정동으로 법정동인 방산동, 포동, 미산동을 관할한다.
[명칭 유래]
신현동은 본래 인천부 신현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관할 법정동인 포동 새우개가 신현(新峴)의 순한글 표현이므로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에 지역의 전통을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행정동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인천부 신현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때는 18세기 중반 이후이다. 1759년(영조 35)에 발간된『여지도서』 「인천도호부」 방리조(坊里條)에 신현면은 “인천부에서 동남으로 30리[약 11.8㎞]에 자리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789년(정조 13)에 발간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신고개면으로 기재되어 있고, 당시 방리에는 일리, 이리, 삼리, 사리, 포촌리 등 5개 리로 편제된 상태였다. 1861년(철종 12)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는 다시 신현면이 등장하지만, 1871년(고종 8)에 발간된 『인천부읍지』에는 또다시 신고개면이 나타난다. 이후 1890년대부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부천군 소래면에 속할 때까지 신현면의 명칭을 사용하였다. 1973년 부천군에서 시흥군으로 편입되고 1980년 소래읍으로 승격하면서 신현이란 지명은 포리 새우개의 자연 마을 이름 한자 표현으로만 남게 되었다.
1989년 1월 1일 시흥시 출범 당시에 미산동, 포동, 방산동, 하중동을 관할하는 신관동으로 개청하였다. 새우개[신고개]의 ‘신’자와 관곡마을의 ‘관’자를 따서 만들어진 명칭이었다.1991년 1월 15일 ‘시흥시 출장소 설치 조례’ 제230호에 따라 하중동이 연성출장소로 분소하게 된 후에도 신관동 명칭을 사용하다가 1992년 1월 1일에 ‘시흥시 행정운영동의 설치 및 동장정수에 관한 조례’ 제282호에 따라 신현동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다. 신현동 주민센터는 시흥시 신현로 46에 있다.
[자연환경]
신현동은 학미산과 망재산을 비롯하여 낮은 산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포동 새우개 남쪽으로는 폐염전이 드넓게 남아 있다. 방산동과 미산동에는 포도밭을 비롯하여 농경지가 많이 남아 있다.
[현황]
신현동은 2017년 12월 현재 면적은 12.64㎢, 인구는 4,490세대에 총 1만 1294명[남자 5,903명, 여자 5,391명]이다. 시흥시의 중심부에서 서쪽에 자리하며 동쪽으로는 은행동과 매화동, 서쪽으로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쪽으로는 장곡동과 월곶동, 북쪽으로는 신천동과 경계를 이룬다. 청룡저수지가 있으며 사적 제413호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가 있다. 포리초등학교, 신현행복건강센터, 시흥교통 버스 차고지, 솔숲공원, 포동시민운동장 등이 소재한다. 신현동 주민센터 건물을 신축하면서 이전의 건물은 도서관과 주민들의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업과 농업이 전반적이었던 신현동의 방산동, 포동, 미산동은 시흥 특산물인 호조벌의 햇토미와 시흥 포도를 생산하는 농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주거지에 자리를 잡은 임대형 공장들에 의한 임대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자연 마을]
신현동의 자연 마을로는 방산동에는 다니, 다지골, 뒷그늘, 마루미, 밤뒤, 방골, 사탄말, 산우물, 황골 등이 있다. 포동에는 새우개, 신촌, 걸뚝 등이 있으며 미산동에는 구시미, 양우재, 고기동, 월촌, 창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