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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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鹽夫舍- |
영어공식명칭 | Yeombusa-maeul |
이칭/별칭 | 옥구도,석줄도,돌주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남 |
[정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개설]
염부사마을은 군자염전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던 사무실과 관사(官舍) 및 염부(鹽夫)들의 이민사(移民舍)가 있던 마을이다.
[명칭 유래]
염부사마을은 염부들이 사는 사택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염부사마을이 있던 옥구도는 1918년 발행한 『근세한국 오만분의 일 지형도(近世韓國五萬分-一地形圖)』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옥구도는 원래 ‘석줄도', ‘돌주리'라 불리는 섬이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때 군자염전이 만들어지면서 바닷물이 드나들던 돌주리[옥구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닌 육지가 되었고 염전 접근성이 좋아진 돌주리에는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살지 않던 이곳에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이유는 염전 때문이었다. 염전 인부들이 거처를 마련하기 시작했고, 염전이 완성된 이후에는 염전을 총괄하는 사무실인 전매국 주안출장소 군자파출소가 자리하였다.
1930년대에는 아동 초등교육을 담당하는 군자공립심상소학교가 세워졌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 조선인이 125호, 일본인이 21호가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많은 주민 중에 염전에서 일하는 염부들을 위한 주택인 이민사와 사무실 직원들을 위한 관사 등이 돌주리에 세워져 마을이 형성되었다. 약 100가구 이상이 사는 마을이 되었고, 이민사와 관사가 있는 마을을 통틀어 염부사라고 했다. 이 외에도 군자역 인근의 평안촌에도 염전 사무실과 관사가 있고, 소래염전 사무실이 있던 섬산에도 관사가 있어서 이들도 염부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자연환경]
염부사마을은 서해를 끼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옥구산이 있다.
[현황]
이민사와 염전 관사 규모가 컸던 돌주리의 염부사는 군자염전이 1987년 시화지구 개발 사업에 편입되면서 염부들이 떠나 옛 모습을 잃어갔다. 이후 군부대 초소가 들어와서 해안 경비를 책임지게 되고 마을의 흔적은 사라졌다. 시흥시는 1998년부터 옥구도를 공원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여 2000년도에 옥구공원을 개장하였다. 옥구공원은 시흥 시민뿐 아니라 수도권 주민들이 이용하는 명소가 되었으며 2010년 경기정원문화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