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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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成模墓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Won Sungm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산119-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창현 |
조성 시기/일시 | 1637년 - 원성모 묘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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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69년 - 원성모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원성모 사망 |
이장 시기/일시 | 1990년 무렵 - 원성모 묘 이장 |
현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산119-1 |
성격 | 묘소 |
양식 | 원형 합장 단분 |
관련 인물 | 원성모 |
[정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원성모의 묘.
[개설]
원성모(元成模)[1569~1637]의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경범(景範), 호는 송운(松耘)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원계검(元繼儉),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郎) 원호영(元虎英)이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거산도찰방(居山道察訪)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근왕병을 모집하여 안산군 마유면[지금의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정왕산에 진을 치고 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3일간의 혈전 끝에 큰아들 원승길(元升吉), 막내아들 원이길(元頤吉)과 함께 삼부자가 같은 날 순절하였다. 공조참판에 추증되었다가 숙종 대에 다시 영의정으로 증직되고 평원군(平原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위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산119-1에 있다. 시흥시 정왕동 아랫평안촌마을의 남쪽 언덕에 있는 원주 원씨(原州元氏) 세장지(世葬地) 맨 위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변천]
원성모 묘는 처음에 경기도 시흥시 정왕본동 배나루마을에 있다가 1990년 무렵 본래 위치에서 서남쪽으로 300m 떨어진 지금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이장할 때 수염까지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의 미라(mirra)로 발견되었는데, 전투 당시 입었던 옷이 변색되지 않은 채 청군의 칼에 찔린 혈흔이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형태]
부인 장수 황씨(長水黃氏)와 합장한 단분(單墳)이다. 묘역에는 상석·향로석·망주석 등의 석물이 갖추어져 있고, 봉분의 촤측에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금석문]
신도비는 네모진 기단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위에 팔작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비문이 마모가 심해 건립 연대와 비문 작성자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족보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대사간 이교인(李敎寅)이 글씨를 썼다는 것을 통해 그가 활약했던 철종 재위 기간[1849~1863]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신의 높이는 1.34m로 비문의 앞면에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행통훈대부 겸 거산도찰방 원공신도비 증정부인 장수 황씨 부좌(贈嘉善大夫工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行通訓大夫兼居山道察訪元公神道碑贈貞夫人長水黃氏祔左)'라고 새겨 있어 신도비인 것을 알 수 있다.
[현황]
원성모 묘의 주변에 아버지 원호영 묘, 아들 원승길 묘 등 여러 묘소가 있다.
[의의와 평가]
비신의 전면에 신도비라고 밝힌 예가 드물어 조선 후기 신도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