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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024
한자 林時采
이칭/별칭 형보(亨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종교/유교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08년연표보기 - 임시채 출생
추모 시기/일시 1892년 - 임시채 효행으로 정려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0년 - 임시채 포함된 오세 육효 정려각 건립
출생지 임시채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 지도보기
정려각 오세 육효 정려각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3길 36-2[외이리 478]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평택

[정의]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형보(亨甫). 아버지는 임재무(林再茂)이다. 아들은 효자 임양성(林養性)이고 손자는 임광수(林光洙)이다.

[활동 사항]

임시채(林時采)[1708~?]는 1708년(숙종 34)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침에는 일찍 안부를 묻는다는 뜻]의 예를 다하였으며,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공양함에 소홀함이 없었다. 어버이의 병환에 몸소 약시중을 하며 곁을 떠나는 일이 없었으며, 어머니의 병이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수일을 소생하게 하였다. 상장(喪葬)에는 예를 다하고 시묘 3년을 정성껏 하니 호랑이가 호위하였다고 한다.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애곡하며 3년간을 소복과 소식으로 시종하여 효와 충을 한결같이 행하였다고 한다. 순창읍에서는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고 쌀과 고기를 주어 표창하였다.

[상훈과 추모]

1892년(고종 29) 임시채·임양성의 정려가 내려졌고, 임시채는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1893년에는 임광수·임종혁(林宗赫)·임종빈(林宗彬)·임환(林煥)의 정려가 내려졌다. 1910년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 오세 육효 정려각(五世六孝旌閭閣)이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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