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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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山建國準備委員會 |
영어의미역 | Preparation Committee for National Construction of Yangs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승 |
[정의]
광복 직후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설립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소속 지부.
[설립목적]
양산건국준비위원회는 갑작스런 일제의 패망으로 양산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 행정, 사회, 치안, 교육 등의 시급한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에 관여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변천]
1945년 8월 15일 서울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자 전국 곳곳에서 각 지역별로 치안을 담당하기 위한 자생적 조직들이 결성되었다. 1945년 8월 18일 양산 지역에서도 김철수·이기주·최학선·지영대·이종군 등을 주축으로 양산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양산건국준비위원회는 치안대를 통해 양산경찰서의 통신 시설을 접수하고, 각 읍면 주재소를 감독하는 등 치안 확보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8월 22일 일본인 경찰서장 이와나가[岩永]는 치안대원을 감금하는 등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그러나 귀국을 걱정한 양산 주재 일본인들의 노력으로 이와나가는 일본 헌병에 의해 감금되었다. 이후 양산건국준비위원회의 지도를 받던 치안대는 재차 양산경찰서를 접수하여 치안 행정을 유지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산건국준비위원회가 좌파 인물들로 운영되는 성향을 보이게 되자, 우파의 중심 인물인 김철수와 안종석은 양산건국준비위원회와는 별도로 양산군 자치추진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양산건국준비위원회는 우파 중심의 양산군 자치추진회와 좌파 중심의 양산인민위원회로 나누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