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151 |
---|---|
한자 | 龜岩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칠백로[구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금호면 구암동 개설 |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7월 1일 - 영천군 금호면 구암동에서 영천군 금호읍 구암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금호면 구암동에서 영천군 급호읍 구암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금호읍 구암리에서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로 개편 |
행정구역 | 구암리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81㎢ |
가구수 | 128가구 |
인구[남, 여] | 289명[남자 158명, 여자 131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구암리(龜岩里)는 구복동(龜伏洞)과 가암동(佳岩洞)을 병합하여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구암리라 하였다. 구복동[혹은 구암(龜岩·九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은 아홉 개의 바위 가운데 한 개가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가암동은 마을에 있는 아홉 개의 바위가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구암리는 조선 말 영천군 칠백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에 거여면·고현면·창수면·칠백면을 통합하여 금호면을 신설함에 따라 영천군 금호면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구복동과 가암동을 병합하여 영천군 금호면 구암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호면이 금호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영천군 금호읍 구암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3일에는 동(洞)을 이(里)로 바꾸게 되어 구암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구암리는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채약산(採藥山)[498.6m] 정상에서 북으로 뻗은 구릉 야산의 계곡 사이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금호강(琴湖江)으로 합류하고 있으며, 가암새못·청못[청지]·구암지 등의 저수지가 있다.
[현황]
구암리는 금호읍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약남리, 북서쪽으로 황정리, 북쪽과 동쪽으로 영천시가지와 인접하고 있다.
구암리는 가암과 구암 두 개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면적은 4.81㎢이고, 인구는 2011년 말 현재 128가구, 289명으로, 남자가 158명, 여자가 131명이다.
금호읍에 영천 금호 포도 작목반이 조직되어 있는데, 구암 채약산 작목반은 구암리 주민 2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영천 일반 산업 단지가 구암리와 동쪽의 채신동에 걸쳐 입지하고 있으며, 구암리로 경부 고속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구암리의 북서부에 위치한 청지(淸池)의 북서쪽에는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관개 시설인 청제(菁堤)가 있다. 청제는 2005년 3월 14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되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제언(堤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제언 앞에는 청제비가 남아 있다. 이 밖에 구암리의 유적으로는 상로재(霜露齋)와 청호재(菁湖齋)가 있다.
구암리에서는 동제가 전승되고 있는데, 음력 정월 14일 저녁 여섯 시경이 되면 제관들이 먼저 마을 뒷산에 가서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를 지내고 난 제관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서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가 11시 30분이 되면 하당인 구암지 인근에 있는 버드나무[서낭나무]에 가서 동제를 지내는 것으로 마친다고 한다. 동제를 지내고 난 다음날에 보름이 되기 때문에 마을 주민이 모두 모여 음복을 하고 귀밝이술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