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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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川里 |
이칭/별칭 | 신안천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한천길[안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안천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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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안천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안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6년 4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안천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안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남면 안천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안천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남면 안천리에서 영천시 화남면 안천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안천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안천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6.89㎢ |
가구수 | 133가구 |
인구[남여] | 241명[남 124명, 여 119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안천리(安川里)는 신녕 땅 ‘안천’라는 뜻에서 이름 붙인 신안천(新安川)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안천리에 있는 자연 마을 중 신안은 신라 경명왕의 여덟째 아들인 월성 대군(月城大君)의 후손이 약 420년 전 능계에 거주하였는데, 박시량(朴時亮)이 이곳에 새로 마을의 터를 잡아 정착하였다고 하여 신안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안천리 마을 위 중터라는 곳에 신라 시대 유물이 발견되며, 햇볕을 많이 받아 양지라 부른다고 한다. 음지는 능계 서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의 정착 연대는 양지보다는 늦으며,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은 대부분 오천 정씨와 밀양 박씨가 살고 있다. 마을의 위치가 하루 중 햇볕을 많이 받지 못하는 곳에 있어 음지라 불리고 있다. 온천·신안천은 약 320년 전 함안 조씨 한 분이 이곳에 이주하여 살아 보니 다른 곳보다 겨울이 따뜻해서 온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안천리는 1914년에 영천군 지곡면(知谷面)에 속하였고, 1934년 4월 1일 화북면에 흡수되었다. 1986년 4월 1일 영천군 화남면에 속하였으며,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안천리는 화산(華山)의 산맥이 동남쪽으로 뻗어 마을의 서쪽을 향하여 낮은 연봉을 이루고 있다. 마을 중앙으로 흐르는 계천(溪川)은 경림산(瓊林山)에서 발원한 것과 학루산(鶴樓山)에서 발원한 것이 월곡(月谷)을 거쳐 신안으로 흐른다. 북쪽에는 마치 왕릉처럼 생긴 능산(陵山)이 아담하고 우아하게 솟아 이 지형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 주고 있다.
계곡과 능계 앞의 기암절벽을 능덤이라고 부른 것도 모두 이 산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현황]
안천리는 안천1리·안천2리·안천3리로 구분되며, 자연 마을로는 능계(陵溪)·큰골[대곡(大谷)]·서원리(書院里)·용덤[龍岩]·신안(新安)·양지(陽地)·음지(陰地)·온천(溫川)[신안천(新安川)] 등이 있다. 안천리의 면적은 6.89㎢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133가구, 241명으로, 남자가 124명, 여자가 127명이다. 예전에는 주로 벼농사 아니면 사과밭이 대부분이었지만, 차츰 포도 등의 가볍고 환금성이 좋은 밭작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오던 탄산 약수인 신안 약수탕은 음용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2011년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다. 안천리는 최근에 교통 여건이 좋아지면서 도시인들의 전원 주택지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