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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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校村洞 |
이칭/별칭 | 향굣골,교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장수로[교촌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영천면 교촌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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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7년 7월 1일 - 영천군 영천면 교촌동에서 영천군 영천읍 교촌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1년 7월 1일 - 영천군 영천읍 교촌동에서 영천시 교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시·영천군 통합, 도농 복합 형태의 영천시 교촌동으로 개편 |
행정구역 | 교촌동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
성격 | 법정동 |
면적 | 0.56㎢ |
가구수 | 694가구 |
인구[남, 여] | 1,379명[남 685명, 여 694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교촌동(校村洞)은 마현산(馬峴山) 비탈에 영천 향교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형성 및 변천]
교촌동은 조선 후기 영천군 내서면(內西面)에 속한 지역으로 향굣골 또는 교촌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13도제 실시로 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영천군과 신녕군을 영천군으로 통폐합하였다. 이에 따라 노상동(路上洞)·내동면(內東面)·창구동(倉邱洞)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교촌동이 되어 영천군 영천면에 편입되었다.
1937년 7월 1일 영천면이 영천읍으로 승격되면서 영천읍 교촌동이 되었다가 1981년 7월 1일 영천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영천시 교동이 되었다. 교동은 1981년에 영천읍이 영천시로 승격되면서 교촌동·성내동(城內洞)·화룡동(化龍洞)을 통합하여 만든 동이며, 1983년 2월 15일 오수동과 쌍계동이 교동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영천시 일원과 영천군 일원을 관할로 도농 복합 형태의 영천시가 설치되어 새로운 영천시에 속하였고, 1998년 교촌동은 서부동 관할로 되었다.
[자연 환경]
교촌동은 마현산(馬峴山) 서남쪽에 형성된 마을로, 작은 분지로 야산이 마을을 잘 감싸고 있다. 교촌동의 북쪽은 마현산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고, 남쪽은 금호강(琴湖江)을 바라보며 과전동·성내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어 배산임수의 명당에 위치한 마을이다.
[현황]
교촌동의 북쪽은 마현산, 남쪽은 과전동 및 성내동, 동쪽은 창구동 및 문내동, 서쪽은 화룡동과 접해 있다. 교촌동의 면적은 0.56㎢이며, 인구는 2011년 말 현재 694가구, 1,379명으로, 남자가 685명, 여자가 694명이다.
교촌동은 영천 시가지의 관문이며 영천성(永川城)의 본 터로 서문오거리 상업 지역과 오수 공업 지역, 북부 농업 지역으로 형성된 도농 복합 지역이다. 교촌동의 서쪽 분지 속에는 복합 문화·체육 시설들로 가득 차 있으며, 시민 운동장·시민 체육관·마현산 게이트볼장·영천 민속관 등이 있다.
교촌동의 교육 기관으로는 영천 여자 중학교가 있으며, 휴식처로는 규모 0.2㎢의 마현산 공원이 있다. 마현산 공원에는 6·25 전적비와 충혼탑 등이 건립되어 ‘호국의 고장’인 영천의 상징이 되고 있는데, 영천지구 전적비는 높이 9.05m로, 6·25 전쟁 당시 영천 지방을 사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0년 10월에 건립되었고, 충혼탑은 탑 높이 2.9m로,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63년 6월에 건립되었다.
교촌동의 문화재로는 보물 제616호인 영천 향교(永川鄕校) 대성전이 있다. 영천 향교는 1502년(연산군 8)에 건립하였고, 명종 때 명륜당을 건축하였다. 1570년(선조 3)에 실화로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때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대성전 5칸, 명륜당 5칸, 동재 3칸, 서재 3칸, 유래루 4칸, 전사청 2칸, 신삼문 3칸, 관리사, 삼일재 등의 건물이 있다. 사찰로는 대한불교 조계종 영천 포교당과 서명사 등이 있는데, 영천 포교당은 은해사(銀海寺) 직할 포교당으로 1939년에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