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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야화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491
한자 切也火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12월 이전 - 절야화군 개설 추정
개정 시기/일시 757년 12월연표보기 - 절야화군을 임고군으로 명칭 변경
개정 시기/일시 776년 1월
관할 지역 절야화군 - 경상북도 영천

[정의]

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개설]

절야화군(切也火郡)은 신라 양주(良州)에 속한 군의 하나로서, 현재의 영천시와 포항시 일부를 관장하였다. 757년(경덕왕 16) 12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임고군(臨皐郡)이 되었으나, 776년(혜공왕 12)에는 원래의 지명인 절야화군으로 환원된 듯하며, 이후 절야화군임고군의 명칭이 혼용되어 왔다. 영천 청제비(菁堤碑)에서 798년(정원 14) 명문으로 수리한 내용에 ‘절화(切火)’라는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절야화군의 명칭은 757년(신라 경덕왕 16) 12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임고군이 되었다는 기록에서 처음 찾을 수 있다. 이때 영현인 죽장이부곡(竹長伊部曲)은 장진현(長鎭縣)으로, 골화소국(骨火小國)에 설치된 현은 임천현(臨川縣)으로, 도동화현(刀冬火縣)은 도동현(道同縣)으로, 사정화현(史丁火縣)신녕현(新寧縣)으로, 매열차현(買熱次縣)민백현(黽白縣)이 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기 전 685년(신문왕 5) 9주 5소경 제도가 완비된 사실에서 절야화군의 설립은 골벌국(骨伐國) 정복으로 인한 지방 제도의 개편과 삼국 통일 이후의 제도 정비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4, 지리지 양주 ‘임고군’ 항목에는 “임고군은 본래 절야화군(切也火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영주(永州)이다. 영현이 다섯이었다. 장진현은 지금의 죽장이부곡이다. 임천현은 조분왕 때에 골화소국을 쳐서 얻어 현(縣)을 설치하였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영주에 합쳐져 속하였다. 도동현은 본래 도동화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영주에 합쳐져 속하였다. 신녕현은 본래 사정화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쓴다. 민백현은 본래 매열차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신녕현에 합쳐져 속하였다[臨臯郡 本切也火郡 景德王改名 今永州 領縣五 長鎭縣 今竹長伊部曲 臨川縣 助賁王時 伐得骨火小國 置縣 景德王改名 今合屬永州 道同縣 本刀冬火縣 景德王改名 今合屬永州 新寧縣 本史丁火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黽白縣 本買熱次縣 景德王改名 今合屬新寧縣]”라고 하였다.

[변천]

절야화군임고군(臨皐郡)은 고려 초에 도동현(道同縣)과 임천현(臨川縣)을 합하여 영주(永州)로 불렸으며, 고울부(高鬱府)라고도 하였다. 현종 때 경주의 속현으로 삼았고, 명종 때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후에 지주사(知州事)로 승격시켰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와 태종영천군(永川郡)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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