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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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皇甫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전민욱 |
입향 시기/일시 | 1554년 - 황보덕이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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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영천 황보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
세거|집성지 | 영천 황보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
성씨 시조 | 황보능장 |
입향 시조 | 황보덕 |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관향으로 하며, 황보능장(皇甫能長)을 시조로 하는 성씨.
[연원]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의 시조인 황보능장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창업공신 가운데 한 사람인 금강성장군(金剛城將軍)으로, 신라에 쳐들어간 후백제의 군사를 고울부(高鬱府)에서 격파하는 등 공을 세워 영주군(永州君)[현 영천(永川)]에 봉해지고, 영천 일대를 식읍으로 받아 그 후손들이 본관을 영천으로 하게 되었다.
황보능장의 선계(先系)는 황보경(皇甫鏡)이라 하나 확실하지 않으며, 또한 그 이후의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고려 말에 목사(牧使)를 지낸 황보안(皇甫安)을 기세조(起世祖)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입향 경위]
충정공(忠定公) 황보인(皇甫仁)이 계유정난에 화를 입게 되자 둘째 아들 황보흠(皇甫欽)의 어린 아들 황보단(皇甫端)이 노비에게 업혀 경상북도 장기(長鬐)로 피신해서 살게 되었다. 이후 3세(世)가 지난 황보덕(皇甫德)이 1554년(명종 9)에 옛 고을인 영천으로 들어와 신녕(新寧)과 경계 지역인 별곡(別谷)[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 숨어살게 되었다.
[현황]
입향 이후 인물을 향지(鄕誌)인 『영양지(永陽誌)』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면, 황보능장(皇甫能長),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인 황보영(皇甫詠), 자선가(慈善家) 황보양(皇甫樣), 참봉(參奉) 황보병(皇甫炳), 효행으로 칭송받은 황보홍(皇甫葓)이 있으며, 세거지역은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이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에는 창하리에 전 금강성장군 황보능장묘(傳金剛城將軍皇甫能長墓)가 있고, 창상리에 황보능장(皇甫能長)의 묘재인 창암재(蒼巖齋)가 있다.
또한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는 황보양(皇甫樣)의 구남정사(龜南精舍), 황보성(皇甫星)의 반백대(攀栢臺)·영모정(永慕亭), 황보상(皇甫相)의 상의재(尙義齋), 황보열(皇甫悅)의 처 영천 이씨의 고사인 황보열처 영양 이씨적덕비(故士人皇甫悅妻永陽李氏積德碑)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