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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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端養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 화동길 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우경원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에 있는 모와(慕窩) 성적(成績)이 건립한 서당을 재실로 이용한 건물.
[개설]
모와(慕窩) 성적(成績)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로 황준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우고 국자감의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사직하고, 늙은 부모에 효도를 다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단양재 좌측 편에는 성적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모와정(慕窩亭)이 위치한다.
[위치]
단양재(端養齋)는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 화동마을 35번 국도 입구에서 화동길을 따라 300여m 들어가면 길 좌측에 있다. 단양재는 일곽 내에 모와정과 담장을 경계로 나란히 배치되어있다.
[변천]
단양재는 원래 모와(慕窩) 성적(成績)이 서당으로 건립하여 사용하던 것을 옮겨 세워 개축하여 재실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창녕 성씨 판서공파 26세손의 증언에 따르면 화동 앞들에 있던 단양재[서당]를 60여 년 전쯤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단양재 우측에는 모와정이 인접하여 배치되어 있다.
단양재 대청 상부 종도리 장혀 하부에 묵서명 흔적은 있으나 희미해서 판독이 어렵고 창건기문 또는 이건기문 편액이 없어 정확한 건립연대를 밝히기는 어렵다. 약 3년 전에 번와공사와 함께 건물에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신재로 교체된 목부재가 곳곳에 있고 대청의 정면과 좌측 창호도 새롭게 교체되었다.
벽체는 내·외부 전체 회미장 마감하여 깨끗하다. 3년전 모와정 번와 공사 시에 단양재 전면 일부를 번와하였다.
[형태]
단양재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의 평탄한 대지에 정남향하여 세워진 건물이다. 건물 주변은 블록담장을 둘렀고 별도의 출입문은 두지 않았다. 담장을 경계로 단양재 좌측에 팔작지붕 형태의 모와정이 있는데, 이 정자 정면에 놓인 대문을 통해서 재사로 출입을 한다.
재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ㄱ’자형의 맞배지붕으로 좌측에 방 2칸을 두고, 방과 직교하여 전면으로 돌출시킨 2칸의 마루를 두었다. 방 전면과 마루칸 좌측면[전면] 앞으로 쪽마루를 설치하여 진입공간을 확장하였다. 정지한 대지에 기단은 자연석 1단 규모로 축조하였으나 외피를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여 내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초석은 넓적한 방형의 자연석을 놓고 그 위에 각주를 세웠다. 각주는 단면크기가 150×150㎜로 건물 규모에 비해 세장한 것을 사용하였다.
문은 방의 경우 전면 쪽은 쌍여닫이 세 살문을 달았고 청방간 출입문은 아래에 굽널을 끼운 외여닫이 문을 달았다. 마루칸 정면에는 외여닫이 세 살문을 최근에 교체해 달았고 좌측면에는 아래에 굽널이 있는 4짝 미서기 유리문을 달았다. 이 문은 최근에 보수하면서 새로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기둥 상부는 납도리와 장혀로 결구하였다.
가구는 3량 구조로 곡선이 자유로운 대들보 위에 동자주형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한 형식이며, 구조적 보강을 위하여 대청 칸에는 창방 형식의 가로부재를 하나 더 끼웠다. 처마는 서까래만 쓴 홑처마에 맞배지붕 형식이다. 수키와 끝은 와구토로 마감하였다.
[현황]
건물과 주변은 보존·관리가 잘되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한 기단과 대청에는 장마루를 깔아 전통적인 기법에서 벗어나 있다. 방 내·외부 벽체는 회미장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천장은 방, 마루 모두 연목을 그대로 노출시킨 연등 천장으로 되어 있다. 목부재에는 니스칠을 하고 연목과 도리, 장혀 끝에는 흰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다. 정면의 방 가운데 기둥 도리에 ‘단양재(端養齋)’ 현판이 걸려있다.
[의의와 평가]
단양재는 서당으로 지은 건물을 증축하여 재사로 사용하는 건물로서 평면 구성은 영천 지역의 일반적인 재사 형식과는 다르다. 건물의 규모와 비례가 맞지 않은 세장한 목부재가 사용되었고, 마루, 니스 칠 마감 등으로 전통기법이 훼손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