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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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溪里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문화유산/무형 유산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석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은정 |
중단 시기/일시 | 1970년대 - 석계리 동제 새마을 운동으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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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 시기/일시 | 1990년대 - 석계리 동제 재개 |
의례 장소 | 석계리 동제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석계리 |
성격 | 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대보름 |
신당/신체 | 소나무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석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동제(洞祭)는 마을 공동체의 풍작을 기원하면서 주민들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민간 신앙으로서 동제는 크게 유교식과 무속식이 있는데, 영천 지역의 동제는 대부분 유교식에 해당한다. 이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 유교적인 이념이 민간에까지 뿌리를 내려 정착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경면 석계리 동제는 전형적인 유교식 기제사에 가까운 형태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고경면 석계리 동제를 모시고 있는 신체는 소나무인데, ‘당수나무’라고 부른다. 소나무 둘레는 약 2m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이고, 수령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고경면 석계리 동제는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990년경부터 다시 모시기 시작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미신 타파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였고, 그 일환으로 각 마을마다 전통적으로 지속되고 있던 마을 제사가 많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때 사라져서 지금까지도 동제를 지내지 않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석계리의 경우는 마을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동제를 지냄으로써 이러한 국면을 벗어나고자 하는 주민들의 의향이 반영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석계리 주민들 사이에서는 “안 모시면 재채기가 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말은 동제를 모시지 않으면 마을에 우환이 생긴다는 의미를 가리키고 있다. 또한 모시지 않으면 “청년들이 없어진다”고 주민들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동제를 모셔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차]
석계리 동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 새벽 두 시경에 ‘당수나무’인 소나무에서 모시고 있다. 2006년 조사 당시 주민 김만달에 따르면, 동제는 주로 이장을 주축으로 하여 참석할 뜻이 있는 주민들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제수(祭需)로는 대추·밤·감·사과·배·익힌 돼지고기·오징어포 또는 대구포를 진설하는데, 이 경비는 동네 운영 자금에서 충당하고 있다고 하였다.
오늘날 석계리 이장은 여성으로서 동제를 지내는 데 장보기는 도와주지만, 그 외에 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다. 여성이 이장이 되고부터인 2010년과 2011년에는 새마을 지도자가 동제를 주관하였고, 2012년에는 마을 총무가 동제를 주관할 예정에 있다고 한다. 동제는 주민 1~2명 정도가 제관이 되어 간소하게 유교식으로 지내고 있다.
고경면 석계리는 동제의 전승이 단절되었다가 마을 우환으로 인해 다시 전승되고 있기 때문인지 제관에 대한 규율이 여전히 엄격하다. 제관이 되면 한 해 동안 아무리 친한 관계에 있더라도 궂은일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현황]
고경면 석계리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새벽 두 시경에 ‘당수나무’인 소나무에서 모시고 있다. 현재 이장이 여성이기 때문에 2012년부터는 마을 총무가 동제를 주관하고 있다. 석계리 동제는 주민 1~2명 정도가 제관이 되어 간소하게 유교식으로 지내고 있다. 정월 대보름 새벽에 동제를 지내고 나서 아침에 주민들이 회관에 모여 별도의 음식을 더 마련해서 함께 식사하고 윷놀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