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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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思里 |
영어공식명칭 | Samsa-ri |
이칭/별칭 | 삼시랑,효자동,호연동,피전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삼사리는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의 남쪽에 있으며, 행정리는 삼사리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삼시랑, 효자동, 호연동, 피전마을 등이 있다.
[명칭 유래]
삼사리(三思里)의 지명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신라 때 시랑(侍郞) 벼슬을 한 세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붙은 설과 ‘시랑 벼슬을 한 세 사람이 이 마을에 숨어 살았다’고 하여 삼시랑골 또는 삼시랑이라는 설, 또는 ‘그 뒤 이 세 분을 생각한다’고 하여 붙여진 설도 있다. 또 ‘세 번을 생각하는 마을 즉, 들어올 때 생각하고, 살면서 생각하고, 떠날 때 생각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삼사리에 대한 기록은 1469년(연산군 2)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처음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삼사랑(三士郞)으로 나오고, 1789년(정조 13)에 발간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삼사랑육리(三思郞陸里), 삼사랑해리(三思郞海里)로 나오며, 1890년 후반에 발간된 『영덕읍지(盈德邑誌)』에는 삼사랑리(三侍郞里)로 나온다.
자연 마을인 효자동[효자각 모퉁이, 돌찡이]마을은 삼시랑 동쪽에 있는 마을로, 효자 밀양박씨 박완실의 효성을 기리고자 세운 정려각인 효자각(孝子閣) 모퉁이 앞에 있는 마을이다. 호연동(浩然洞)마을은 삼사동마을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연꽃이 만발한 연못을 메우고 성토하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넓은 땅에서 이룩된 마을이라 하여 호연동(湖然洞)이라고도 군지(郡誌) 등에 기록되어 있으나, 마을 터주인 이씨 족보에서는 호연동(湖蓮洞)으로 기록되어 있는 마을이다. 피전동(皮田洞)[稷田]마을은 삼사동마을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농경시대 때 논이 귀하여 밭에서 나는 피(稷)를 식량으로 하였는데, 이때 피밭이 많다고 하여 피전 또는 직전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삼사리는 8세기경[약1,300년 전] 성이 안씨(安氏)라는 인물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그 뒤 평산신씨가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中南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피전동(皮田洞)과 호연동(浩然洞)을 병합하여 삼사동이라 하고 영덕면에 편입되었다.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되었는데, 지금의 마을회관 남쪽을 끼고 흐르는 괴못골걸[川]을 경계로 북쪽은 삼사 1구(區), 남쪽은 호연동·피전동을 합하여 2구로 구분되었다가 합구(合區)되었다. 그 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로 동을 리로 개칭할 때 삼사동은 삼사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삼사리는 마을 북쪽에 자리한 천제봉[77m]을 비롯하여 대부분이 높이 약 100m 이하의 구릉지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은 동해안과 접하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좁고 긴 형태의 파식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파식대 위에는 해안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현황]
2020년 말 기준 삼사리 면적은 1.84㎢이고, 인구는 2021년 5월 기준 총 338가구에 570명[남 284명, 여 266명]이다. 동쪽은 동해와 접하고, 서쪽은 남정면 남정리와 화전리의 강고개[江峴], 남쪽은 남정면 남호리, 북쪽은 오포리와 연해 있다. 삼사리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가의 어촌에서는 어선 어업과 미역 생산이 이루어진다. 삼사해상공원이 있는 북동 산지와 오션비치골프앤리조트가 있는 남서 산지 사이를 국도 제7호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