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109 |
---|---|
한자 | 元直里 |
영어공식명칭 | Wonjik-ri |
이칭/별칭 | 직천,고드내,문방골,초당골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원직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속해 있는 법정리.
[개설]
원직리는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북쪽에 있으며, 행정리는 원직1리·원직2리이다. 자연 마을로는 직천마을·고드내마을 등이 있다.
[명칭 유래]
원직리(元直里)는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고드내[直川]의 으뜸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직1리는 조선시대 세종대인 1421년경 순흥안씨(順興安氏)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였을 때 마을 앞 냇물이 곧게 흐른다고 하여 직천(直川)이라 하였다. 이후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승장(李承長)이란 선비가 임진왜란을 피하여 이곳에 와서 서당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며 휴양하였다고 하여 문방골[文房谷]이라고도 불렸다. 또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이준(李濬)이 서원을 세우고 또 청소년들에게 목축업을 가르쳐 큰 목장을 경영하였다고 하여 초당골[草當谷]이란 지명도 있다. 원직2리는 1414년(태종 14) 영천이씨(永川李氏)의 이유(李儒)가 개척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원직리는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중남면(中南面) 지역으로, 고드내 아래쪽이 되므로 아릿고드내, 또는 하직천(下直川)·하직(下直)이라 하였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영덕군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장현동(長峴洞), 외직동(外直洞)을 병합하여 하직동이라 하고 영덕면에 편입된 이후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로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하직리가 되었고, 1990년 1월 3일 군조례(郡條例) 제1146호에 의해 하직리를 원직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에서 뻗어 나온 높이 약 150m 이하의 구릉지성 산지가 오십천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데, 이들 산지를 넘어 영덕장으로 통하는 오솔길을 장고개[長峴][50m]라고 한다. 장고개 마을 뒤쪽에는 병풍을 두른 것 같다고 하여 선병산(仙屛山) 또는 자산[尺山]이 둘러싸고 있다. 원직1리의 남쪽에 자리한 문방골마을에서 서쪽 방향으로 약 1㎞정도 떨어진 곳에는 단장한 선녀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옥녀봉(玉女峰)[200m]이 있다. 원직2리 남서쪽에 있는 노물봉(老勿峰)은 연꽃이 물에 떠 있는 것과 같은 연화부수(蓮花浮水)의 형상으로 인삼이 있다고 하여 노물봉 또는 학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학봉(鶴峰)이라고도 한다. 원직리 남동쪽에는 직천이 만든 범람원이 넓게 펼쳐져 있고, 직천은 하천 직강화를 통해 수로가 정비되어 있다.
[현황]
원직리의 2020년 말 면적은 2.40㎢이고, 2021년 5월 기준 총 95가구에 150명[남 72명, 여 78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원직리의 동쪽은 소월리, 서쪽은 화전리, 남쪽은 오포리, 북쪽은 상직리, 영덕읍 남산리와 접해 있다. 상직리에서 발원하는 직천의 하류 지역에 해당하며, 직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행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