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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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梅日里 |
영어공식명칭 | Maeil-ri |
이칭/별칭 | 뫼하리,매화리,산하동,상하동,일이동,일이곡,노동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매일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매일리는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행정리는 매일1리와 매일2리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매일마을, 일이동마을, 서점마을 등이 있다.
[명칭 유래]
매일리(梅日里)의 지명 유래는 매화리(梅花里)의 '매(梅)' 자와 일이곡(日伊谷)의 '일(日)' 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일1리는 매일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14세기경 야성군(野城君) 윤혁(尹赫)이 개척하였다고 한다. 마을 남서쪽 산 아래에 있었다고 하여 '뫼하리'라 하다가 발음이 변하여 '매화리(梅花里)'라 불렸고, 또 산하동(山下洞), 상하동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매일2리인 일이동(日伊洞)과 서점(西店)마을은 18세기 후반 정조(正祖) 연간에 밀양박씨(密陽朴氏)가 개척하였다고 하며, 그 뒤 인동장씨(仁同張氏)가 들어왔다. 일이동마을은 서점동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해가 먼저 뜬다고 하여 일이곡(日伊谷) 또는 노동(魯洞) 이라고 하였다. 서점마을은 산하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서점광산이 있어 사람들이 모여 상업이 성행하였으며, 야성 서쪽에 있는 점이라 하여 '서점'이라 하였다. 서점광산은 처음에는 은이 났으나, 1960년대에는 아연을 주로 채광하였다.
[형성 및 변천]
매일리는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서면(西面) 지역으로, 1895년 5월 26일 칙령(勅令) 제98호에 따라 종전의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영덕군에 속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總督府令)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매화동(梅花里), 일이동(日伊洞), 서점동(西店洞)을 병합하여 매일동이라 하고 달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매일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매일리의 서쪽에 자리한 덕갈산(德葛山)[445.8m], 일이봉(日伊峯)[315m]을 비롯하여 북쪽 못산[313.4m] 등 대부분 지역이 높이 약 150~450m의 전후의 산지들이다. 동쪽으로 갈수록 산지의 높이가 점차 낮아진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산지 소하천은 매일리의 중앙 지역을 가로지르며 동류하여 곡저평야를 만들면서 북서쪽에서 대서천(大西川)에 유입된다. 매일리의 동쪽에는 곡류하는 대서천이 범람하면서 형성된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현황]
매일리의 2020년 말 면적은 6.82㎢이며, 인구는 2021년 5월 기준 총 76가구에 113명[남 53명, 여 60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대서천을 사이에 두고 흥기리와 접해 있고, 서쪽은 덕산리, 남쪽은 주응리, 북쪽은 용평리가 있다. 동쪽 대서천 변을 따라 매일1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남쪽과 북쪽 산지 사이 골짜기에 매일2리가 있다. 매일1리 마을 앞은 대서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평야에 논농사 중심의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