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03 |
---|---|
한자 | 鳳洲精舍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2길 73[가산리 18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건립 시기/일시 | 1724년 - 봉주정사 건립 |
---|---|
현 소재지 | 봉주정사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2길 73[가산리 182] |
성격 | 정사 |
양식 | 겹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사.
[개설]
봉주정사(鳳洲精舍)는 남국주(南國柱)[1690~1759]가 세운 강학소이다. 남국주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하중(廈仲), 호는 봉주(鳳洲)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재능을 보였으며, 20세 때에는 시(詩)로 명성을 높였다. 남국주는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고, 후진 양성과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문집으로는 『봉주집』, 『역범통록(易範通錄)』, 『가례총설(家禮叢設)』 등이 전한다.
[위치]
봉주정사는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에 있다. 가산리는 등운산 줄기가 마을 뒤로 뻗어 동해로 향하고 남쪽으로 뒷산이 마을 앞에 솟아 있다. 서북으로 큰 한티, 작은 한티가 있고 그 사이로 읍령천과 오서천이 합류하여 동해를 향한다. 재실은 비봉산과 자시봉 사이 가산들을 바라보며 자리한다. 뒤로 가산지가 있다. 원래 정사의 위치는 지금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는데, 최근에 옮겨지었다.
[변천]
봉주정사는 남국주가 1724년(경종 4)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하였으나 최근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남국주의 행적과 뜻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로 활용하고 있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에는 방형(方形)의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전면에는 사주문을 냈다. 평면 구성은 어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온돌방이 있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전면에는 반 칸의 퇴칸에 헌함을 설치하였다.
[현황]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이 쓴 「봉주정사기」 기문과 「극복재(克復齋)」, 「경의당」 현판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봉주정사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강학소였으나 후에 재실로 변천된 건물로 학술적 보존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