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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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松庇 |
영어공식명칭 | Park Songb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배상현 |
활동 시기/일시 | 1258년 - 박송비 위사공신 녹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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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263년 - 박송비 수사공좌복야 보임 |
몰년 시기/일시 | 1278년 - 박송비 사망 |
출생지 | 예주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
성격 | 무신|재상 |
성별 | 남 |
본관 | 영해 |
대표 관직 | 참지정사 |
[정의]
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장군 및 재상.
[개설]
박송비(朴松庇)[?~1278]는 경상도 예주(禮州)[영해(寧海)] 출신으로 1258년(고종 45) 집정 최의(崔竩)를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위사공신(衛社功臣)에 녹훈되었으며, 관직은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가계]
박송비의 본관은 영해(寧海)이다. 영해박씨 가문의 족보에 따르면 시조 박제상(朴堤上)의 33세손이라고 한다. 박송비의 후손들은 박송비를 영해박씨 태사공파(太師公派)의 파조로 추숭하고 있다.
[활동 사항]
박송비는 예주 지역 군리(郡吏)에서 출세하였다. 1258년 3월 장군(將軍)에 있으면서, 대사성 류경(柳璥), 별장 김준(金俊)[김인준(金仁俊)] 등과 함께 무인집정 최의를 제거하고 권력을 왕에게 이양하였다. 이로써 1196년(명종 26) 최충헌(崔忠獻)이 이의민(李義旼) 일당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뒤, 최충헌·최우(崔瑀)·최항(崔沆)·최의로 이어지는 4대 62년간의 최씨 무인정권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정변 후 박송비는 대장군(大將軍)이 되었으며 이듬 해 위사공신에 봉해졌다. 또한, 공신을 우대하는 정책에 따라 1259년 내향(內鄕)인 예주가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재차 예주목(禮州牧)으로 승격하였다.
1262년(원종 3) 동지추밀원사우산기상시(同知樞密院事右散騎常侍)에 보임되었다. 1263년 수사공좌복야(守司空左僕射)에 올랐고, 1278년(충렬왕 4) 참지정사에 있으면서 생을 마감하였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는 박송비를 성품이 관대하여 남들과 공을 다투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
[상훈과 추모]
1258년 위사공신에 녹훈되었다. 1262년 공신당(功臣堂)을 다시 지었는데, 위사공신으로 박송비의 초상화가 벽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