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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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猷遠 |
영어공식명칭 | Lee Yuwon |
이칭/별칭 | 굉보(宏甫),냉천(冷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현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이유원(李猷遠)[1795~1773]은 영덕지역의 학자로 문집 『냉천집(冷泉集)』이 전한다.
[가계]
이유원(李猷遠)[1695~1773]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굉보(宏甫), 호는 냉천(冷泉)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휘일(李徽逸)이고, 할아버지는 이의(李檥)이며, 아버지는 이지확(李之𤌍)이다. 이의는 원래 이현일(李玄逸)의 아들인데, 이휘일의 후사(後嗣)가 되었다. 어머니는 안동권씨 권수원(權壽元)의 딸이다. 부인은 여강이씨 이덕정(李德禎)의 딸과 안동권씨 권순령(權舜齡)의 딸이다. 동생은 면운재(眠雲齋) 이주원(李周遠)이다.
[활동 사항]
이유원은 1695년 경상북도 예천(醴泉) 외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종조(從祖)인 이재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41년(영조 17)에 이휘일·이현일을 제향한 인산서원(仁山書院)이 훼철되고, 1744년에는 영해의 집이 수해를 입자 진보(眞寶) 송강(松江)으로 옮겼다. 이후 거주지를 선대의 묘소 아래로 옮기고 이휘일의 유허가 있던 곳에 백호정(柏湖亭)을 건립하였다. 1765년에는 영양(英陽) 석포(石浦)에 있는 이시명의 옛집으로 이거하여 석천서당(石川書堂)을 짓고 강학하였다. 만년에는 예전에 이휘일이 은거하던 영해의 저곡(楮谷)에 명서암(冥棲庵)을 짓고자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유원은 권구(權榘)·권덕수(權德秀)·김성탁(金聖鐸)·권만(權萬)·박희민(朴煕民)·김낙행(金樂行) 등과 학문적으로 교유하였다. 위선 사업에 힘써서 『존재집(存齋集)』, 『갈암집(葛庵集』, 『밀암집(密菴集)』 등의 문집을 교감하고, 『홍범연의(洪範衍義)』, 『주서간보(朱書刊補)』, 『존갈유사보(存葛遺事補)』, 『기갑추송록(己甲追訟錄)』, 『인산지(仁山志)』, 『뇌택백호일록제영(雷澤柏湖日錄題詠)』 등의 서책을 필사하고 정리하였다. 또 집안에서 내려오는 글들을 모아 『안릉세전(安陵世典)』을 편찬하였다. 문집으로 1882년 간행된 4권 2책의 『냉천집(冷泉集)』이 전한다.
[묘소]
이유원의 묘는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