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68
한자 申乭石
영어공식명칭 Shin Dolseok
이칭/별칭 신태을,신의호,신돌선,태백산 호랑이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8년 11월 3일연표보기 - 신돌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6년 3월 13일 - 신돌석 영릉의진 조직
몰년 시기/일시 1908년 12월 12일연표보기 - 신돌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신돌석 의병대장신공유허비대통령장에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48년 - 순국의사신돌석장군기념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신돌석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65년 - 순국의사신돌석장군기념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99년 - 충의사 건립
출생지 신돌석장군생가지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신돌석장군1길 31[도곡리 528-1]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15-5
묘소 충의사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산60-1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영릉의진 창의장

[정의]

개항기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신돌석(申乭石)[1878~1908]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경(舜卿), 초명은 신돌선(申乭先), 본명은 신태호(申泰浩), 이명은 태홍(泰洪)·태을(泰乙)·대호(大浩)이다. 돌석은 아명이며, ‘태백산 호랑이’라고도 불렸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예로서 7대조 진사 신후종(申厚宗) 때부터 영해(寧海)에 들어와서 살았다. 이후 영해부(寧海府) 아전(衙前)에서도 밀려날 만큼 가세가 기울었다. 경상북도 영해군(寧海郡) 남면(南面) 복평리(福坪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528] 복디미마을에서 아버지 신석주(申錫柱)[신석주(申淅柱)]와 어머니 분성김씨(盆城金氏) 사이의 2남 2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신돌석은 어린 시절 이웃 상원(上元)마을의 진성이씨 문중 서당에서 공부하였다. 양반 자제들과 함께 공부한 것을 볼 때 아버지 대에는 집안 살림이 어느 정도 넉넉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체격이 장대하고 기운이 셌다. 신돌석이 의병을 처음 가담한 것은 1896년 전기의병 때이다. 의병 가담에 앞서 1895년 8월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났고, 11월에는 단발령(斷髮令) 공포되어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그런 가운데 영해 지역에서는 영해의진이 조직되었는데, 당시 18세의 신돌석도 가담하여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였다고 하나, 기록은 자세하지 않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다시 의병이 일어났다. 이에 신돌석은 1906년 4월 6일(음력 3월 13일) 무렵 고향에서 영릉의진(寧陵義陣)을 조직하고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1908년 12월 12일 순국할 때까지 2년 8개월 동안, 영덕과 경상북도 울진을 넘나들었으며, 경상북도와 강원도 남부의 일월산(日月山)과 동해안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 터를 잡은 일제의 전초기지, 이를 지원하는 일본인 및 우편취급소, 통감부 말단 기관을 척결하는 활동을 하였다.

1907년 8월 정미조약으로 군대가 강제 해산되면서 의병운동은 더욱 열기를 띠게 된다. 신돌석은 이 무렵 영양·진보·청송·경주 등지에서 주된 항쟁을 펼쳤다. 1908년에는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에 참여하기 위하여 잠시 북상하였다가 돌아왔다. 돌아온 뒤 평해·영양·울진·봉화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 수비대와 싸웠다. 당시 일본군이 “출몰(出沒)이 자재용이(自在容易)하다.”라고 평가할 만큼, 신돌석은 뛰어난 지휘력으로 영릉의진을 이끌었다. 1908년 겨울이 다가오자 신돌석은 만주로 이동하여 독립전쟁을 펼칠 계획을 세우고 자금 모집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1908년 11월 19일 새벽 영덕군 지품면 눌곡(訥谷), 세칭 누르실에서 김상렬(金相烈) 형제에게 피살되었다.

[저술 및 작품]

신돌석의 행적과 의병 활동을 엮은 『신장군실기(申將軍實記)』가 전한다. 홍원표가 엮었으며, 모두 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소]

신돌석은 1971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31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65년 7월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에 '순국의사신돌석장군기념비'가 건립되었다. 1999년에는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산60-1 일원에 신돌석장군유적지가 조성되었다. 신돌석장군유적지에는 신돌석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는 '충의사'를 비롯해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1999년 11월 18일에는 우곡리에 있던 기념비를 이전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