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69
한자 金日元
영어공식명칭 Kim Ilwon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0년경 - 김일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김일원 산남의진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10년 10월 31일연표보기 - 김일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김일원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양성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김일원(金日元)[1880?~1910]은 경상북도 영덕군 외남면(外南面)[지금의 남정면] 양성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산남의진(山南義陣)은 정용기(鄭鏞基)가 고종(高宗)의 밀지(密旨)를 받은 아버지 정환직의 명에 따라 1906년 봄 경상북도 영천(永川)에서 일으킨 의병부대이다. 정용기는 서울 진격을 목표로 삼고 관동(關東)으로 길을 트기 위해 산남의진을 이끌고 북상하던 중 1907년 10월 7일 경상도 청하군(淸河郡)[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일부를 관할하던 옛 행정 구역] 죽장면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 미야하라[宮原] 소위가 이끄는 청송수비대(靑松守備隊)의 기습을 받고 격전 끝에 전사하였다. 정용기가 전사하자 정환직이 영덕·영일(迎日)·청송(靑松)·의성(義城) 일대에서 의진을 다시 일으키게 된다. 당시 산남의진에 가담한 김일원은 일본군 수비대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군사 100여 명과 함께 경상북도 북부와 동해안 연안 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907년 10월 29일 흥해 읍내에 들어가 우편취급소를 공격하여 일본인 이치하라[市原爲太郞] 소장과 소장 가족을 처단하고, 우편취급소에 보관된 300여 원을 압수하였으며, 근처에 있는 일본 군경의 근거지인 경무분파소 및 기타 13동의 집을 불태웠다. 11월 3일에는 신녕(新寧) 읍내에 들어가 군청의 무기를 다량 징발하고 경무분파소 및 순검 박재진(朴在鎭)의 집을 불태웠다. 11월 4일 의흥(義興) 읍내에 들어가 경무분파소를 공격하여 분파소와 순검 주택 3동을 파괴하였다. 11월 15일경 다시 흥해 읍내로 들어가 친일 인물들로부터 군자금을 징수하고, 군청을 포함한 여러 가옥들을 불태웠다. 11월 16일에는 청하 읍내에 들어가 순검 김학윤(金學潤)에게 군수품을 징수하였고, 1909년 12월 28일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에서 군수품을 징수하였다. 그러나 끝내 체포되어 1910년 9월 20일 대구공소원형사부에서 김수곡(金水谷)·윤흥곤(尹興坤) 등과 함께 교수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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