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48
한자 朴惟水
영어공식명칭 Park Usu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신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박유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0년 9월 - 박유수 군자금 모집 활동
추모 시기/일시 2015년연표보기 - 박유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활동지 경상북도 영해군 북이면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지도보기
활동지 강원도 평해군 근서면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신여대의진 의병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박유수는 의병 활동 당시 경상북도 영해군(寧海郡) 오서(烏西) 인천동(仁川洞)[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천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활동 사항]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 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박유수황이근(黃二根) 등 9명과 함께 의병장 신대여의 지휘에 따라, 총칼을 휴대하고 1910년 음력 9월 29일 경상북도 영해군(寧海郡) 북이면(北二面) 삼읍동(三邑洞)[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삼읍리]에서 동장 배상설(裵相說), 김화한(金華瀚), 김화환(金華煥) 등 3명에게서 당목·마포·삼승·옥양목 각 5필 및 백목 2필, 엽전 15냥 등을 모집하였다. 1907년 11월 2일에는 강원도 평해군(平海郡) 근서면(近西面) 금천동(金川洞) 이명오(李明五)의 집에서 군자금으로 20냥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체포되어 1911년 1월 2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2년 칙령 제23호에 의해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

[상훈과 추모]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판결문」(대구지방재판소, 1911. 1. 20.)
  • 『독립유공자공훈록』 22(국가보훈처, 2016)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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