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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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學用 |
영어공식명칭 | Hong Hakyong |
이칭/별칭 | 남홍학용(南洪學用)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진희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11월 15일 - 홍학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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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홍학용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10월 28일 - 홍학용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7년 - 홍학용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
출생지 | 경상북도 영양군 동면 율목동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167 |
활동지 |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홍학용(洪學用)[1883~1944]의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이며,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양군 동면 율목동이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남홍학용(南洪學用)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9일 오후 4시 무렵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이 주도하고 약 200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홍학용도 창수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군중은 창수면주재소를 공격하였는데, 이때 홍학용은 같은 마을인 창수동 출신 박성운 등과 함께 주재소의 기물과 책 등을 파손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된 홍학용은 4월 10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6월 5일 대구지방법원과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주거침입, 건조물 손괴, 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