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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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眞城李氏 |
영어공식명칭 | Jinseong-Lee Clan |
이칭/별칭 | 진보이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44년 - 이선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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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진성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입향지 | 입향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 |영해면 원구리 |
세거|집성지 | 세거지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 |
성씨 시조 | 이석(李碩) |
입향 시조 | 이선도(李善道)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이석을 시조로 하고 이선도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개설]
진성이씨(眞城李氏)는 이석(李碩)[?~?]을 시조로 하고 이선도(李善道)[1544~?]를 입향조로 하는 성씨로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연원]
진성이씨의 시조는 고려 말 진보현리(眞寶縣吏)를 지낸 이석이다. 장자 이자수(李子脩)가 홍건적의 난에 큰 공을 세워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서훈되고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졌으며, 정3품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를 지냈다. 이자수가 원향인 진보를 떠나 안동 주촌으로 이거하여 안동 지역에서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조선시대 대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은 이석의 7세손이다. 후손들은 선조 누대의 세거지인 진보를 본관으로 하였다. 관향 진보를 진성으로 쓰게 된 연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이석의 6세손 이우(李堣)가 중종반정 공신으로 청해군(靑海君)에 봉군되고, 이우의 부친 이계양(李繼陽)[1424~1488, 퇴계의 할아버지]이 진성군(眞城君)에 추봉되어 이때부터 진성이씨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입향 경위]
진성이씨로 옛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지역에 처음 입향한 사람은 시조 이석의 9세손이며,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지낸 이선도이다. 이선도의 호는 영모당(永慕堂)으로 좌찬성 이식(李埴)[퇴계의 부친]의 증손자로서 재령이씨 이은보(李殷輔)의 여식과 혼인하여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를 거쳐 영해면 원구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퇴계는 이선도의 종조할아버지이다.
[현황]
입향조 이선도는 영해면 원구리에 정착하였다고 하나 후손들은 축산면 상원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영덕읍 우곡리와 창수면 신기리 위정마을에도 이선도의 후손들 일부가 세거하고 있다.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영덕군 관내 거주하는 진성이씨[진보이씨 포함]는 224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련 유적]
축산면 상원리에 이선도의 재실 영모당(永慕堂)과 이화영(李華永)의 재실 효우재(孝友齋), 이중립(李中立)의 재실 육이당(六怡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