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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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天保 |
영어공식명칭 | An Cheon-bo |
이칭/별칭 | 소의(昭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안천보(安天保)[1339~1425]는 고려 말 판종부시사, 공부전서 등을 지냈으며, 조선왕조 개창 후 태종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나아갔으며, 세종 연간 좌의정, 영돈녕부사에 제수되었다.
[가계]
안천보의 본관은 순흥(順興), 시호는 소의(昭懿)이다. 할아버지는 찬성사를 지낸 안문개(安文凱)[1273~1338], 아버지는 순성군 안천선(安千善)이다. 아들은 판중추원사를 지낸 안수산(安壽山)[?~1434], 사위는 영의정을 지낸 심온(沈溫)[1375~1419]으로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의 외할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안천보는 1362년(공민왕 11) 별장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전객부령, 군기시윤, 판사복시사, 의덕부좌사윤, 판종부시사를 역임하였다. 그 뒤 공부전서에 올랐으나, 곧 면직되었다. 이후 거문고와 서적으로 혼자 소일하며, 16년간 은둔생활을 하였다.
안천보는 1408년(태종 8) 태종의 부름을 받아 검교한성부윤에 임명되었으며, 1409년 검교참찬을 거쳐 검교찬성에 올랐다. 1418년(세종 즉위년) 좌의정에 제수되었지만, 곧 물러났다. 이에 세종은 안천보를 영돈녕부사에 제수하였다. 1424년(세종 6) 세종은 전곶(箭串)[뚝섬]에 있는 토지 2결을 내려주었으며, 영돈녕부사로 치사하자 과전 70결을 더 하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안천보가 세상을 떠나자 세종은 예관을 보내 사제(賜祭)하였으며, ‘소의’라는 시호를 내렸다. 1448년(세종 30)에는 제전(祭田) 20결을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