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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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秦礩溟 |
영어공식명칭 | Jin Jil-myeong |
이칭/별칭 | 기주부원군(基州府院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활동 시기/일시 | 1170년 - 진질명 문과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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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179년 - 진질명 기주부원군 책봉 |
거주|이주지 | 진질명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풍기(豊基) |
대표 관직 | 문하좌시중 |
[정의]
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진질명(秦礩溟)[?~?]은 문하좌시중을 지낸 인물로 풍기진씨(豊基秦氏)의 중시조이다.
[가계]
진질명의 본관은 풍기(豊基)이다. 아버지는 문하좌정승을 지낸 진계춘(秦繼春)이며, 어머니는 평장사를 지낸 이세보(李世譜)의 딸 우봉이씨(牛峰李氏)이다. 부인은 밀직승지를 지낸 정충민(鄭忠愍)의 딸 연일정씨(延日鄭氏)이며, 아들은 좌우위보승장군을 지낸 진원(秦元)이다.
[활동 사항]
진질명은 1170년(의종 24)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좌시중을 지냈으며, 김부식(金富軾)[1075~1151]의 아들 김돈중(金敦中)[1119~1170]과 문학으로 깊이 교유하였다. 1170년 일어난 정중부의 난 때 형 진질직(秦礩直), 진질황(秦礩晃)과 더불어 항거한 공으로 1179년(명종 9)에 포상을 받았다. 이때 진질직은 낭주군, 진질황은 영원군, 진질명은 기주부원군에 봉해졌다. 기주는 풍기의 옛 지명으로 이때부터 진질명의 후손들이 풍기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으며, 진질명은 풍기진씨의 중시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