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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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器 時代 |
영어공식명칭 | Paleolithic Age|Ston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방기철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9년 - 방절리 유적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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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4년~1995년 - 연하리 유적, 덕포리 유적, 북쌍리 유적, 방절리 유적 지표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 방절리 유적, 영흥리 유적 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 시굴 및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신천리 유적, 용석리 유적, 방절리 유적, 광전리 유적 지표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6년 - 주천리 유적A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7년 - 주천리 유적B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7년~2008년 - 방절리 유적, 삼옥리 유적 시굴 및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 주천리 유적C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 꽃병굴 유적 발굴 조사 |
[정의]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뗀석기와 간석기를 도구로 사용하던 시기의 역사.
[개설]
강원도 영월 지역은 산악지대이면서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만큼 산과 물에서 다양한 생활 자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석기 시대 이미 영월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석기 시대는 뗀석기[打製石器]를 주로 사용하던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磨製石器]를 주로 사용하던 신석기 시대로 구분된다. 영월 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남한강 지류 유역에 형성된 하안단구, 잔구성 구릉, 석회암 동굴 등에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또 강안에 형성된 충적대지상에 분포하는 유적, 동굴과 바위그늘[岩陰] 등에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유적들을 통하여 영월 지역은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시대까지 인간의 삶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석기 시대 유적과 유물]
구석기 시대는 인간이 도구를 제작한 단계에서부터 농경과 목축을 활용하기 이전 단계인데, 25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이다. 뗀석기를 주요 도구로 사용하였는데, 가공 기술의 정도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한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수렵·채집·어로 등을 행하였고, 무리생활을 하였다. 또한 동굴·바위그늘·막집 등에서 살았으며, 이동생활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는 12만년부터 10만 년 전 전기, 10만 년부터 3만 5000년 전 중기, 3만 5000년부터 1만 2000년 전을 후기로 구분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영월의 경우 1989년 후탄리(後灘里)와 옹정리(瓮亭里)에서 찍개와 긁개 등이 처음 발견된 이후 확인된 구석기 유적은 총 11곳이다.
1989년과 1991년 후탄리와 옹정리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찍개[chopper]·긁개[scraper]·몸돌[石核]·격지[剝片] 등이 채집되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한림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영월읍 덕포3리 지표조사에서 찍개, 영월읍 연하리 지표조사에서 찍개, 남면 북쌍리 지표조사에서는 사냥돌·주먹도끼·찍개·긁개·뚜르개[awl] 등이 채집되었다. 1999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시굴 결과 영월읍 영흥8리에서 찍개와 석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떼어진 격지를 채집하였다. 2004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지표조사로 한반도면 신천2리에서 몸돌과 격지, 주천면 용석4리 지표조사에서 석기 등이 채집되었다.
영월의 구석기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유적은 방절리 유적,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 삼옥리 유적 등이다. 방절리 유적은 영월읍 방절리 749-5번지 서강 유역 하안단구상에 있는데, 1999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찍개와 박편 등이 수습되었는데 중기부터 후기의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되었다.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은 남면 연당리 322-2번지의 수평동굴에 있다. 2004년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을 실시하였는데, 구석기부터 신석기, 청동기, 고려 시대 유물까지 발굴되었다. 큰굴은 8개의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석기 유물은 석회마루 아래 6층과 7층에서 출토되었다. 긁개·뚜르개·몸돌·격지 등과 함께 사람의 뼈, 원숭이·곰·사슴·소·코뿔이·하이에나 등 동물의 뼈화석 등도 발견되었다. 작은굴에서는 코뿔이·하이에나·곰·소·사슴 등의 짐승 뼈가 출토되었다.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은 후기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된다. 삼옥리 유적은 영월읍 삼옥리 73번지 동강의 회절부 일대 주변 잔구성 구릉에 있다. 2007년부터 2008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몸돌·격지·주먹찌르개[尖頭器]·찍개·망치돌·긁개·찌르개 등 530여 점의 뗀석기가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 유적과 유물]
원시 농경과 목축을 하며 흙을 빗어 만든 토기를 사용하고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를 사용한 시기가 신석기 시대이다. 신석기 시대는 홍적세 이후 토기 출현부터 금속기 사용 전까지의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1만 년 전부터 3,000년경 전까지에 해당하는데, 토기의 제작부터 편평밑토기와 덧무늬토기[隆起紋土器]가 사용되던 전기,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사용되던 중기, 다양한 토기가 나타나고 바탕흙[胎土]에 변화가 있던 후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김삿갓면 각동리에서 간돌검[마제석검]과 간돌화살촉[마제석촉]이 수습되어 영월 지역에 신석기 시대가 존재하였음이 처음으로 확인하였다. 1989년 영월읍 방절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이 발견되었고, 이후 영월 여러 지역에서 행하여진 지표조사, 시굴, 발굴 등의 고고학적 조사를 통하여 10여 곳에서 신석기 시대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다.
2004년 지표조사 결과 북면 문곡리 밤나무골에서 그물추[漁網錐], 한반도면 광전2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이 채집되었다. 또한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을 발굴하였다. 발굴 결과 큰굴에서는 빗살무늬토기, 가락바퀴[紡錘車], 뼈로 만든 낚싯바늘, 그물추 등을 발견하여, 당시 사람들이 실을 만들고 물고기 잡이를 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 사람 뼈뿐 아니라 사슴·토끼·자라·너구리·박쥐 등의 동물 뼈도 발견되었다. 작은굴에서는 신석기 시대 후기 생활터가 확인되었다.
주천리 유적은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1619번지[A], 375번지[B], 890-1번지[C] 등 세 곳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A유적은 2006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하였는데, 야외노지(野外爐址) 16기, 주혈유구(柱穴遺構) 3기 등이 확인되었다. 신석기 중기 이후의 것으로 여겨진다. B유적은 2007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발굴 결과 야외노지 7기가 확인되어 마을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유적 조성 시기는 신석기 시대 중기 이후나 후기로 추정된다. C유적은 2008년 예맥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하였는데, 신석기 시대 중기 후반의 주거지 3기가 확인되었다.
영월읍 삼옥리 73번지 동강 회절부 일대 잔구성 구릉에 있는 삼옥리 유적은 2007년부터 2008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바위그늘 2개소가 확인되었다. 1호 바위그늘에서는 빗살무늬토기편과 토제어망추 등이 발견되었고, 2호 바위그늘에서는 소·사슴·돼지·개·곰·닭·꿩 등의 동물 뼈가 발견되었다. 삼옥리 유적은 후기 신석기 유적으로 추정된다.
영월군 북면 공기리 산93번지 일대 석회암 동굴은 2008년부터 2009년 국립춘천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발굴 결과 신석기 시대 토기 조각 63점, 돌대패[石鑿]·돌도끼[石斧]·석촉(石鏃)·그물추·갈돌[磨石]·갈판[碾石]·숫돌[砥石]·모룻돌[臺石] 등 41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 사슴·노루·고라니·소·산양·멧돼지·말·오소리·수달·족제비·너구리·여우·늑대·호랑이·곰·토끼 등의 짐승, 꿩·고방오리·큰기러기 등의 조류의 뼈가 출토되었다. 이를 통하여 당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식량을 획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월군 북면 연덕리 산48번지의 석회암 동굴에 꽃병굴 유적이 있다.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춘천박물관에 의하여 공동 발굴되었다. 발굴 결과 빗살무늬토기편과 귀바늘·삿바늘·동물뼈장신구·조개장신구편, 큰칼조개편 등 6점의 골각기(骨角器)가 출토되었다. 꽃병굴 유적은 신석기 중기부터 후기의 생활공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역사적 의의]
영월 지역의 방절리 유적은 구석기 중기부터 후기의 유적이다. 주천리 유적과 꽃병굴 유적은 신석기 중기부터 후기, 삼옥리 유적의 2호 바위그늘은 신석기 후기 유적이다. 특히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곳을 신석기 시대 사람들도 그대로 주거지로 삼았음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하여 영월 지역은 구석기 시대 이미 역사가 시작되어 신석기 시대까지 지속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구석기 시대 유적들을 통하여 당시 사람들이 동굴, 구릉지, 바위그늘 등을 주거지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유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짐승의 뼈는 수렵이 생계유지의 주요 수단이었음도 보여 준다.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가락바퀴를 통하여 당시 사람들이 실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또 낚싯바늘과 그물추 등을 통하여 수렵뿐 아니라 어로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