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561 |
---|---|
한자 | 寧越靑年會 |
영어공식명칭 | Yeongwol Youth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용철 |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개설]
영월청년회(寧越靑年會)는 일제강점기 영월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운동 단체이다. 실력 양성과 지역발전을 목적으로 활동하였으며 강연회, 궁민(窮民) 구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영월청년회는 지방 개량(地方改良), 문화 발전, 사상 발휘, 체육, 지육(智育), 덕육(德育)의 배양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영월청년회는 1926년 10월 설립되었다. 초대 회장은 이규진(李揆眞)으로 추정되며 1927년 3월 이규진의 후임으로 엄진환(嚴辰煥)이 취임하였다. 영월청년회의 회원 규모는 1927년 3월 1일 기준 20명이었고, 1929년 1월 1일에는 38명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영월청년회는 1927년 3월 청년회의 취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자 공회당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강연회에서는 총 세 가지 주제의 강연이 진행되었는데 첫째, 이규진의 청년회 설립 취지 발표. 둘째, 전대무(田代武)의 대만 시찰담(臺灣視察談), 셋째, 엄동한(嚴同韓)의 ‘사무(事務) 성공은 용기에 있다’ 등이었다. 광복 후인 1947년 3월에는 궁민 구제 활동을 진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많은 청년 단체가 조직되었는데, 영월청년회 역시 같은 배경에서 탄생한 여러 청년 단체 중 하나였다. 초대 회장으로 추정되는 이규진은 1927년~1929년 당시 영월군의 군수였으므로 영월청년회는 관변적 성격을 가진 단체였다. 영월청년회의 1930년대~1940년대 활동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광복 후인 1947년 궁민 구제 활동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명맥은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