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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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忄-賓- |
영어음역 | Jeong B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준옥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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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 |
성별 | 남 |
생년 | 미상 |
몰년 | 미상 |
본관 | 경주 |
대표관직 | 사헌부감찰 |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 자는 공백(恭伯), 호는 곡구(谷口). 좌찬성(左贊成) 정지년(鄭知年)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 정사익(鄭思翊)이다.
[활동사항]
정빈은 여수시 소라면 현천에서 태어났다. 학덕이 높았던 우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생으로 몸가짐이 공손하고 근엄하였으며 문장이 훌륭하였다. 임진왜란 때 작은아버지 정사묘(鄭思竗)와 더불어 집안의 종 300명을 이끌고 의곡 1천 석을 임금이 파천해 있던 의주로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 이항복이 정빈의 공을 조정에 알려 사온서봉사(司醞署奉事)에 제수되었다. 1593년(선조 26) 임금이 서울 환도 후 사헌부감찰을 거쳐 낭천, 직산, 전의, 아산 등지의 원(員)을 역임하면서 치적을 쌓았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순조 때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신위는 순천 옥계사(玉溪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