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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836
한자 李貴齡
영어음역 Lee Gwiryeong
이칭/별칭 수지,계은,강호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346년(충목왕 2)연표보기
몰년 1439년(세종 21)연표보기
본관 연안
대표관직 좌의정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언수(洪彦修)의 딸인데 후사는 없다. 둘째 부인은 창녕성씨(昌寧成氏) 총부상서(摠府尙書) 성준득(成准得)의 딸로, 사이에 아들 이책(李策)과 이돈(李敦)을 두었다. 호조판서 이귀산(李貴山)의 형이다.

[활동사항]

이귀령(李貴齡)[1346~1439]은 고려 말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와 청주 등지의 관군만호(管軍萬戶)를 지냈다. 1392년(태조 1) 조선이 개국되자 태조가 임금이 되기 전에 세웠던 공으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었다. 1394년(태조 3) 중군사마(中軍司馬)를 거쳐 형조·예조의 전서(典書)를 지냈고, 이어서 지방으로 나가 길주도도안무찰리사(吉州道都安撫察理使)와 동북면도순문병마도절제사(東北面都巡問兵馬都節制使) 등을 역임하였다.

1403년(태종 3) 원종공신이 되어 두 번이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판승령부사(判承寧府事)·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병조판서·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판좌군도총제부사(判左軍都摠制府事)·변정도감제조(辨定都監提調)·삼군판부사(三軍判府事) 등을 두루 거쳤다. 1415년(태종 15) 검교우의정(檢校右議政)을 거쳐 이듬해 검교좌의정(檢校左議政)이 되었다가 곧이어 좌의정으로 사직하였다.

이후 용인 하동촌(下東村) 내곡(內谷)에서 20여 년의 여생을 한가롭게 보냈다. 1435년(세종 17) 세종이 예법대로 근정전에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어 주었다. 1439년 94세로 죽으니 나라에서는 이틀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조의를 표하였으며, 부물(賻物)을 내리고 관에서 장사를 돌보아 주었다.

[묘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아버지 이원발의 묘소 서쪽 해좌(亥坐)에 있다. 묘소 앞에는 묘비가 있는데 현재의 묘갈은 다시 세운 것으로, 17세손 이병대(李炳大)가 글을 짓고 19세 방손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 이의국(李義國)이 썼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강호(康胡)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5 행정지명 현행화 이동면에서 이동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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