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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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銀同 |
영어음역 | Lee Eun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필기 |
[정의]
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이영발(李英發)이고, 이명민(李命敏)의 조카이다.
[활동사항]
1453년(단종 1) 이명민(李命敏)이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김종서·황보인 등과 함께 살해되자 조카 이은동은 연좌(緣坐)되어 관노가 되었다. 1468년(세조 14)에 임금의 병이 심하여 세자(世子)가 계유년(癸酉年) 이래의 난신(亂臣)의 숙질(叔姪)과 자매(姉妹) 중 연좌자(緣坐者) 200여 인을 방면하였다.
이 때 이명민(李命敏)의 조카인 이은동은 다른 형제인 이맹준(李孟準)·이은철(李銀哲)·이흥조(李興祖)·이영조(李榮祖)·이철동(李哲同)·이환승(李煥昇)·이연동(李年同)·이말손(李末孫)·이오을(李吾乙)·이미동(李未同)·이잉질동(李芿叱同)·이중동(李仲同) 등과 함께 방면되었다.
그러나 난신역적(亂臣逆賊)에 연좌된 자로서 나이 성년(成年)이 되면 다시 여러 군읍(郡邑)에 예속시켜 노비(奴婢)로 삼는 규례에 따라 1482년(성종 13)에 강진(康津)의 관노(官奴)가 되었다. 그 뒤 1491년(성종 22)에 고신(告身)을 되돌려 받고 풀려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