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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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耔 |
영어음역 | Lee Ja |
이칭/별칭 | 차야(次野),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문의(文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광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때 함께 급제한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과 교유했다.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이조좌랑 등을 역임하다가 연산군의 난정에 불만을 품고 외직을 자청하여 의성현령이 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이후 언관직에 발탁되어 수찬(修撰)·교리(校理)·사간 등을 지냈으며, 1517년 부제학·우부승지에 올랐다. 1519년 형조판서·우참찬 등이 되었으나, 이 해에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사림파로 지목되어 파직되었다.
[학문과 사상]
조광조 등 기호사림의 급진적 정치개혁을 따르지 않고 훈구파와 사림파의 중도적 정치노선을 걸었다. 기묘사화 후 음성에 퇴거하여 ‘음애’라 자호(自號)하고,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였던 김세필(金世弼)·이약빙(李若氷)·이연경(李延慶)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독서로 여생을 마쳤다.
[저술 및 작품]
저서에 『음애일기(陰崖日記)』·『음애집(陰崖集)』이 있으며, 노수신(盧守愼)이 행장을 썼다.
[묘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산11-17번지에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되었는데, 묘는 원형의 쌍분이고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문인석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기묘명현록(己卯名賢錄)』에도 이름이 올라 있으며, 충주의 팔봉서원(八峰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