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67 |
---|---|
한자 | 延安金氏 |
영어음역 | Yeonan Kimssi |
영어의미역 | Yeonan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
집필자 | 김장환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선조[임진왜란] |
성씨시조 | 김섬한(金暹漢) |
입향시조 | 김광유(金光濡) |
[정의]
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광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시조 김섬한(金暹漢)은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냈다. 한 형제가 같은 조정에 벼슬하면서 왕에게 직간하다가 도리어 왕의 노여움을 사서 형은 강릉에, 아우는 연안으로 유배되었다. 김섬한의 후손들이 연안김씨로 전해진다.
김섬한 이전의 선계는 오래되고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다. 본관은 원 지명이던 시염성이 1310년(충선왕 2)에 연안부(延安府)로 개칭되었기 때문에 연안으로 하였다. 시조의 묘소는 실전되었고, 1961년 경남 통영군 도산면 원산리 도선산에 단을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13일에 향사한다.
[입향경위]
김섬한의 5세손 김도(金濤)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주사록을 지내고, 전언을 거쳐 1371년에는 명나라에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여 동창부 구현승(東昌府丘縣丞)이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부모 봉양을 이유로 사양하고 귀국하니 공민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김도는 4형제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벼슬에 올라 명문 전통의 가문을 빛냈다. 그의 후손 중 구례현감공파(求禮縣監公派)의 16세 김광유(金光濡)의 부인 파평윤씨의 묘가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에 있는 것으로 보아 용인 입향조는 김광유일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유적]
입향조 김광유의 묘는 1986년 후손들에 의해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형제봉 천년약수터 인근으로 이장되었으며 후손인 한학자 김용승의 묘와 김세영의 묘가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