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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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驪陽陳氏 |
영어음역 | Yeoyang Jinssi |
영어의미역 | Yeoyang Ji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 |
집필자 | 이인영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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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 |
입향시기/연도 | 고려 후기 |
성씨시조 | 진총후(陳寵厚) |
입향시조 | 진화(陳澕) |
[정의]
진총후를 시조로 하고 진화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여양진씨는 원래 중국에서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한 문벌이다. 원조는 송나라 때의 복주 사람 진수(陣琇)이다. 우윤의 벼슬에 있었는데 국란이 일어나자 한반도에 건너와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 해당하는 여양현 덕양산 아래 정착하였다. 진수의 후손 진총후가 고려에 출사하여 예종 때 신호위대장군(神虎威大將軍)에 이르렀다. 인종조에 김향·이공수 등과 함께 이자겸의 왕위 찬탈 기도를 막은 공으로 여양부원군이 되었다.
[입향경위]
매호(梅湖) 진화는 시조 진총후의 4세손으로 이규보와 쌍벽을 이루었던 고려시대의 대문장가이다. 지공주사의 관위에 올랐는데 임지에서 죽자 사패지였던 용인에 장사함으로서 여양진씨가 세거하게 되었고 사실상 용구(용인)계파의 입향조가 되었다. 진화의 유택을 용인에 마련한 이후 증손 진사문(陳斯文), 8세손 진윤평(陳允平) 23세손 진평호(陳平鎬)에 이르기까지 6백여 년간 세계를 이어 오면서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를 중심으로 진씨 일문의 집성촌을 형성해 왔다.
[현황]
후손들이 대부분 외지로 나가 전국에 퍼져 살고 있고 세거지에는 몇몇 후손들만이 살고 있다.
[관련유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 산38번지에 입향조인 진화의 묘가 있으며 1992년 10월 12일 용인시 향토유적 제31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입구에 후손 진사문의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