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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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韓氏 |
영어음역 | Cheongju Hanssi |
영어의미역 | Cheongju Ha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기흥구 상하동|보라동|지곡동 |
집필자 | 김장환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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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7세기 |
성씨시조 | 한란(韓蘭) |
입향시조 | 한후상(韓後相) |
[정의]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후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한씨는 한국의 최고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이다. 본관은 문헌에 청주 외에 평산·한양·안변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3형제가 있어, 각각 기씨(奇氏)·선우씨(鮮于氏)·한씨(韓氏)가 되었다고 하며, 따라서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의 후예인 우량의 먼 후손이 된다.
그러나 종래 기씨조선으로 알려졌던 고조선 사회는 실상 한씨조선이고, 준왕은 기준(箕準)이 아니라 한준(韓準)이며, 따라서 한씨는 기자의 후예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씨족이라는 것이 사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한씨는 고려 후기에 이르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우선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15명, 재상 12명, 공신 24명, 대제학 1명을 배출하였다. 왕비도 6명을 배출하였다. 오늘날 청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 일대는 한씨의 동족 부락이 적지 않아 신씨(申氏)와 함께 이 고장의 대성으로 꼽히고 있다.
청주한씨의 세계는 시조 한란의 후대에서 30여 파로 나뉘는데, 그 중 후손이 많기로는 양절공파, 문정공파, 충간공파, 몽계공파, 관북파, 충성공파 등 6파가 청주한씨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국세 조사에서는 가구 수 21만 8,821가구, 인구 70만 4365명으로 286성 중 제12위였다.
[입향경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청주한씨는 주로 독성리에 오랫동안 세거하고 있는 대표적 성씨 중의 하나이다. 청주한씨는 35개 파가 있다고 하는데 독성리에 동족촌을 이루고 있는 청주한씨는 등제공파(登第公派)이다. 등제공 한사수(韓謝壽)는 13세손이며 낙도당(樂道堂) 한구(韓逑)는 등제공의 5세손이다.
독성리 일대 청주한씨들은 시조로부터 21세손인 한후상(韓後相)의 후손들로 한후상은 독성리 청주한씨의 입향조이다. 한씨들이 세거하고 있는 독성리에는 13세손인 한구의 효자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도 입향과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후손의 증언에 따르면 한후상이 광주 실촌면 부항리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병이 생겨 치료를 위해 독성리로 이주하였으며 그 후 자손들이 자연스럽게 세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치료에 이용되었던 우물이 지금도 마을에 보존되어 있으며, 마을 공동 우물로 사용되고 있다. 『경기도지』에 의하면 청주한씨가 원삼면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380여 년 전 일이며, 조사 당시 35호가 살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황]
매년 음력 10월 4일에 제례를 봉행하다가 최근 들어서 음력 10월 중 일요일에 합동으로 제례를 모시고 있다. 세가 많을 때는 60여 호에 300여 명이 거주하였는데, 현재는 타지로 이거한 후손이 많아 15호에 60여 명만이 거주하고 있다. 후손 중에서 31세손인 제일약품 창업자 한원석이 있고 제일약품 사장인 한승수가 있다.
[관련유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 마을 주위에 청주한씨들의 묘역이 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