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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선생 묘소에 얽힌 유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903
한자 圃隱先生墓所-由來
영어음역 Poeun Seonsaeng Myosoe Eolkin Yurae
영어의미역 A Tale of the Master Poeun's Grav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효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풍수설화
주요 등장인물 저헌 선생 부인|지관
관련지명 능원리
모티프 유형 명당 차지하기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전해 내려오는 명당에 대한 이야기.

[개설]

용인시 모현읍능원리에는 포은 정몽주선생 묘가 있다. 묘 앞에는 선생의 제사를 받들고 있는 재실이 있고, 멀리서 마주보고 있는 곳에는 충렬서원이 있다. 그리고 정몽주 선생 묘 바로 옆에는 저헌 이석형(李石亨)의 묘가 있는데, 「포은선생 묘소에 얽힌 유래」는 이 두 묘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이유를 말해 주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상황]

1975년 6월 10일 용인읍 김량장리 북구에서 이경배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하였다.

[내용]

포은 선생이 개성의 선죽교에서 타살된 뒤 임시로 개성의 한 지역에 모셔졌다가 고향인 영천으로 이장하기 위해 길을 나설 때의 일이다. 개성에서 상여를 메고 영천을 향해 가던 중 지금의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바람결에 포은 선생이 명정이 벗겨져 날아가 버렸다. 때아닌 바람에 명정이 벗겨져 길이라도 인도하듯 날아가자, 지관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이를 신기하게 여겨 명정이 날아가는 곳을 끝까지 따라가 보니 지금의 저헌 선생이 모셔진 곳에 떨어져 있었다.

사방을 두루 살펴보던 지관은, 세상에 이곳보다 더 훌륭한 명당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감탄하면서, 포은 선생의 후손들에게 이는 선생께서 스스로 마련하신 명당자리이니 마땅히 이곳에 안장하여야 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때 포은 선생의 증손녀인 저헌 선생의 부인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저헌 선생의 부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얻어서 자신의 남편과 자신의 안장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묏자리를 발견한 시간이 저녁 무렵이었기 때문에, 포은 선생의 후손들은 종자들을 다그쳐 이날 겨우 광만 마련하고 상여는 다음 날 안장하기로 하였다. 이 틈을 노린 저헌 선생의 부인은 남몰래 밤새도록 물을 길어다 사람들이 파놓은 광에 부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 나와 보니 광 속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지관과 후손들은 크게 당황하였으나, 바로 그 옆자리도 역시 명당자리이니 여기다 모시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며 중론을 모은 끝에 나중에 정한 택지에 모시기로 하였다. 그후 저헌 선생의 부인은 남편이 죽자 맨 처음 명정이 떨어진 곳에다 묘지를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저헌 선생은 바로 포은 선생의 증손주 사위였기에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윽고 저헌 선생의 부인은 노환으로 자리에 눕자 아들들을 불러서는, “내가 죽거든 너희 아버지가 묻힌 곳에 합장하거라. 그러면 우리 연안이씨 집안에는 대대로 복록이 끊기지 않을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저헌 선생의 아들들이 어머니의 말대로 했더니, 명당자리의 복 때문인지 연안이씨 가문은 나날이 번성해졌다. 저헌 선생 이후로 월사 이정구(李廷龜) 선생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장가들이 모두 연안이씨였음은 이를 말해 주는 한 예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영일정씨 문중에서는 포은 선생 이후로는 이렇다 할 유명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포은 선생의 묘소와 관련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조선 말기까지도 연안이씨 가문에서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으나, 그후 영일정씨 문중에까지 알려지면서 서로 혼사를 맺지 않을 만큼 반목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포은선생의 묘소에 얽힌 유래」의 기본 모티프는 명당 차지하기이다. 명당자리에 대한 탐욕에서 비롯되는 명당 차지하기는, 죽은 사람보다는 살아 있는 후세를 위한 현세적인 관념을 가진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풍수설화 중에는 특히 명당 쟁탈형 이야기가 많은데, 명당 쟁탈형은 인간의 욕심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욕심으로 인해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어넣기도 한다.

한편, 이 이야기는 구술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사실이 변경되기도 하였다. 포은 선생의 묘가 이장될 당시는 1406년으로 이야기에 실려있는 포은 선생 증손녀나 저헌 선생[1415~1477]은 태어나기 전이었다. 또한 저헌 선생의 부인인 영일정씨는 저헌 선생의 사망 시기보다 32년 전인 1445년에 사망하는 등 실제 사실과는 다른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3 행정지명 현행화 모현면에서 모현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2011.04.04 수정요청 이재훈, 집필자 김효림 선생님과 논의하여 내용 변경
2011.03.29 모티브 분석 수정 사실관계 관련 단락 추가
이용자 의견
변** 연안이씨와 영일정씨가 왜 혼사를 맺었는지 궁금합니다. 201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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