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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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泰封 官府 |
영어공식명칭 | Political Official System of Tae-bong[泰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태봉 |
집필자 | 이재범 |
[정의]
904년부터 918년까지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에 도읍하였던 궁예가 건국한 태봉[마진]의 중앙 및 지방의 관제와 관직.
[개설]
궁예는 904년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바꾸고 관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였다. 마진 관제는 905년 철원으로 천도를 한 이후에도 계속하여 운용되었고 911년에 국호를 다시 태봉(泰封)으로 바꾼 뒤에도 여전히 관제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918년 6월에 왕건이 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재건한 뒤에도 사용되었으며, 개주(介州)로 옮긴 뒤 변화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변천 과정]
궁예 정권의 마지막 국호가 태봉이므로 이를 태봉 관제라고 통칭하였다. 궁예는 901년에 처음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는데, 이때 고려 국호를 제정함과 동시에 일정한 관제를 두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 국호 시기의 중앙 관제는 체계적으로 명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궁예는 고려를 건국하기 이전인 894년에 명주를 점령하고 궁예의 휘하 세력이었던 3,500명의 군사를 14대로 나누어 그 대장을 부장(部長)[또는 사상(舍上)]이라고 하였던 적이 있다. 이 무렵에 “비로소 내외 관직을 설치하였다[始設內外官職].”라고 한 것을 보면 궁예 정권의 체계화된 관제 정비를 시기적으로 조금 앞으로 소급하여 볼 수도 있다.
궁예 정권의 행정 관제와 관등 및 운용 체계는 마진으로 국호를 바꾸고 송악군에서 철원경으로 천도하면서 구체적으로, 또한 체계적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철원을 황제의 도시로 삼으면서 실시한 체계적인 행정체계라는 점에서 철원의 지역적 특성과 커다란 관련이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이처럼 중앙 집권 국가의 관제가 시행된 예는 많지 않다. 삼국이 있었고, 태봉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통일 국가의 단초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지역적 특성을 찾을 수 있다. 마진의 중앙 관제 내용은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
[내 용]
태봉의 중앙 관제는 신라·고려 전기의 관제와 비교할 때 명칭은 다른 것이 많지만, 기능상으로는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태봉의 중앙 관제에서 최고 관부는 광평성(廣評省)이었다. 광평성에는 광치나[시중], 서사[시랑], 외서[원외랑]와 같은 관원이 있었다. 광평성은 신라의 집사부(執事部)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 기능은 문자대로 널리 협의하여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기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광평성이 최고 관부인 태봉의 통치체제는 기본적으로 호족연합적 성격이라고 추정한다. 한편,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광평성은 왕의 직속기구이자 보좌기구이면서 전제적인 왕권을 완충하는 작용을 하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명칭은 그렇지만 왕권에 의하여 수시로 그 기능이 변화하여 국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기구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광평성은 904년부터 918년에 궁예 정권이 몰락한 뒤에는 왕건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광평성 이하의 중앙 관부는 다음과 같다.
병부(兵部)는 군부(軍部)와 같이 군인들의 인사를 담당하고, 우역과 군무를 담당하였다. 대룡부(大龍部)는 창부와 같이 호구와 공부, 전곡을 담당하였다. 수춘부(壽春部)는 예부와 같이 의례와 조회, 교육을 담당하였다. 봉빈부(奉賓部)는 예빈부와 같이 외국의 사신과 연회를 담당하였다. 의형대(義刑臺)는 형부와 같이 사송과 형률을 담당하였다. 납화부(納貨部)는 대부시와 같이 재화와 늠장을 담당하였다. 조위부(調位部)는 삼사와 같이 회계와 전곡을 담당하였다. 내봉성(內奉省)은 도성(都省)과 같이 일반 행정을 담당하였다. 금서성(禁書省)은 비서성(秘書省)과 같이 여러 서적과 국가의 축소를 담당하였다. 남상단(南廂壇)은 장작감(將作監)과 같이 토목과 영선을 담당하였다. 수단(水壇)은 수부(水部)와 같이 물을 관리하였다. 원봉성(元奉省)은 한림원(翰林院)과 같이 문서를 관리하였다. 비룡성(飛龍省)은 천복시(天僕寺)[태복시(太僕寺)]와 같이 말과 목장을 관리하였다. 물장성(物藏省)은 소부감(少府監)과 같이 여러 기물을 보장하였다. 사대(史臺)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번역하였다. 식화부(植貨府)는 식물과 과수(果樹)를 재배하였다. 장선부(障繕府)는 성황(城隍)을 수리하였다. 주도성(珠淘省)은 기물들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