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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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溱黙 |
영어공식명칭 | Kim Jinmuk |
이칭/별칭 | 김택(金澤),김용묵(金容默)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김진묵(金溱默)[1876~?]은 1876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났다.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김택(金澤) 또는 김용묵(金容默)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김진묵은 1906년 의병을 일으킨 왕회종(王會鍾)의 부장으로서 5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유격전을 펼치며 혜산진[현 북한 양강도 혜산시]까지 진격하였다. 1907년 7월 24일 정미조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1907년 8월 왕회종·조인환(曺仁煥)·권준(權俊)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의병을 조직하였다. 9월에는 경기도 양주(楊州)와 파주(坡州), 적성(積城), 삭령(朔寧), 안협(安峽), 토산(兎山) 일대에서 활약하였고, 400여 명의 주민들이 의병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1908년 1월 28일 이인영(李麟榮)을 총대장으로 한 13도 창의군(倡義軍)의 서울 진격이 실패하자, 2월에 김진묵은 허위(許蔿)를 총대장으로 하는 경기도 연합 의병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10월에 총대장 허위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후 연합 의병들은 흩어져 독자적인 활동을 하였다. 김진묵은 이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활동을 하였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진묵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