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891 |
---|---|
한자 | 大邱愛樂保健病院 |
이칭/별칭 | 애락원,대구애락원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서구 통학로 30[내당동 12-3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정은 |
[정의]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 1909년 건립된 개신교 사회복지 기관이자 의료선교 기관.
[개설]
대구애락보건병원(大邱愛樂保健病院)은 선교사들에 의하여 설립된 한센병 치료 및 요양기관이다. 처음에는 대구나환자병원, 대구나병원으로 불리다가 1924년부터 애락원(愛樂園)으로 불렸다.
대구 동산병원의 설립자인 존슨(Johnson)은 1909년 6월 병원 근처 선교지부 구내에 초가 1채를 매입하여 나환자 10명을 수용하여 나환자 요양 사업을 시작하였다. 존슨은 1910년 가을 건강상의 이유로 동산기독병원을 사직하고 후임으로 플레처(Archibald G. Fletcher)[1882~1970]가 부임하여 사업을 크게 발전시켜 나갔다. 1913년 플레처는 영국 나환자 선교회 후원으로 기존의 나환자 수용소를 수리하고 면모를 일신하여 ‘나환자 병원’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1915년 4월 플레처는 영국 나환자 선교회의 지원금 1만 5000엔을 지원받아 현재 위치인 서구 내당동에 새 요양원 부지를 매입하여 1917년 6월 남녀 병동과 진료실, 예배당, 창고 등을 건립하여 이전하였다. 1924년 난방시설을 갖춘 2층 건물로 증축하면서 ‘퍼커즈버그 기념관[Parkersburg Hall]’이라 칭하였고 한글 이름도 ‘애락원’으로 바꾸었다.
애락원은 플레처 원장이 1942년 6월 강제 출국당하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광복 후 플레처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귀환하면서 병원 기능을 회복하여 1949년 당시 1,750명 환자를 수용할 정도로 급성장하였다. 1968년 병원 이름을 ‘대구애락보건병원’으로 변경하였다. 대구애락보건병원은 1980년대에 들어와 한센병이 소멸되자 일반 병원으로 변화를 모색하여 1995년 외부 진료를 시작하였다. 2004년 대구애락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2013년 10월 병원 설립 100주년을 기념으로 설립자 플레쳐의 후손을 초청하여 기념식을 거행하였고, 애락원 역사자료관을 개관하였다.
[위치]
대구애락보건병원은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 12-37번지에 있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내당역 근처이다.
[형태]
대구애락보건병원은 1923년 5월 선교사 플레처가 건립한 붉은벽돌조 2층 건물로 현재 대구애락보건병원 내에 3동의 건물이 있으나 바닥, 천장 등이 퇴락한 채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병동은 정면 중앙의 현관 포치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평면은 장방형으로 현관 홀과 연결되는 계단실 좌우에 각각 1개씩의 병실을 배치한 단순한 형이다. 외관은 콘크리트 기초 위에 붉은벽돌을 쌓아 벽체를 구성하고 현관 포치의 좌우에 일정한 간격으로 창을 배치하여 목재 오르내리창을 달았다. 지붕은 모임지붕에 기와를 이었으며, 내부 바닥은 목재 장마루판을 깔았는데 현재 방치되어 사용할 수 없다. 연면적은 498㎡이고 건축면적은 249㎡이다.
[현황]
대구애락보건병원은 1995년 한센병 치료 기관인 ‘대구애락보건병원’을 폐업하고, ‘재단법인 대구애락보건병원 부속의원’이란 명칭으로 외래환자 진료[특수 피부과, 피부과, 가정의학과]를 시작하였다. 2004년 법인 명칭을 ‘대구애락원’으로 바꾸었으며, 2007년 법인 부속으로 화상 환자 전문 치료를 위한 광개토병원을 개설하였다.
[의의와 평가]
개신교 사회복지 기관이며 의료선교 기관으로 시작한 대구애락보건병원은 대구 지역의 의료사업을 확대·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