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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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Kkaengimaltagi |
이칭/별칭 | 깨이말타기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달서구 호산동|서구 비산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도희 |
놀이 장소 | 대명동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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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장소 | 호산동 -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 |
놀이 장소 | 비산동 -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
성격 | 민속놀이 |
노는 시기 | 백중 무렵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
[개설]
깽이말타기는 대구광역시의 여러 논농사 지역에서 일꾼들이 논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세벌매기를 끝낼 백중(百中) 무렵의 시기에 행하던 민속놀이이다. 깨이말타기라고도 일컫는다.
[연원]
세벌매기는 벼의 성장 과정 중에서 거의 마지막 농사 작업이기에, 세벌매기를 끝내고 나면 수확할 때까지 농사의 잔일만 남게 된다. 그래서 품앗이를 한 일꾼들은 세벌매기를 끝낼 시기에 깽이말타기를 하면서 논의 주인과 함께 술과 음식을 먹으며 풍년을 기원하였다.
[놀이 도구 및 장소]
깽이말타기는 농기와 매구[꽹과리], 북, 장구, 징, 소고, 목나발 등을 도구로 하였고, 풍물을 치면서 진행한다. 놀이 복장은 일상 작업복을 기본으로 하고 머리와 등에는 풀잎을 꽂는다. 일꾼들의 행렬은 논에서 출발하여 길 위와 논 주인의 집 마당까지 이어진다.
[놀이 방법]
깽이말타기는 일꾼들이 논매기를 다 끝내고 마을로 돌아갈 때 주인집 상머슴을 ‘깽이말’에 태우고 풍물을 치면서 주인집으로 향한다. 깽이말타기는 징, 매구, 북, 소고 등의 풍물을 올리면서 길 위와 주인집 마당까지 춤을 추면서 한바탕 논다. 풍물패는 자진모리가락으로 마당을 돌다가 조름굿가락으로 바꾸어 신과 흥을 동우고, 다시 ‘벅구춤’을 추면서 덧배기가락으로 춤추면서 돌아간다. 이러한 풍물놀이와 춤을 반복하다가 소를 외양간으로 몰아넣고, 마당에 둘러앉아 술과 음식을 먹는다.
같은 대구광역시라 하더라도 깽이말을 타는 상머슴의 복장이나 놀이 방법은 동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남구 대명동에서는 상머슴이 삿갓을 거꾸로 쓰고 얼굴에 검정 황칠을 하였고, 나머지 일꾼은 「칭칭이」나 「오호방해야」 등의 노래를 부르며 뒤따랐다. 달서구 호산동에서는 논 주인이 마을 어귀에 소를 몰고 나오면 일꾼들은 주인집 상머슴과 중머슴을 소 등에 태우고 주인집으로 향하였다. 머슴들은 소 등 위에서 “풍년이네”라고 외치면서 춤을 추고 풍물패가 그 뒤를 따랐다. 특히 서구 비산5동의 상머슴은 삿갓을 꺼꾸로 뒤집어 쓰고 머리에는 미투리를 늘어뜨렸는데 이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깽이말타기는 고된 농사일을 품앗이하고 수확을 기다리는 시기에 일꾼들이 행하던 놀이이다. 농경사회에서 농사의 풍흉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깽이말타기도 풍작을 기원하는 집단의식이 놀이로 표출된 것이다. 깽이말타기가 끝나면 논 주인의 집에서 손국수와 막걸리, 호박적 등을 내어서 일꾼들과 이웃 사람들이 모두 나누어 먹었다. 깽이말타기는 마을공동체의 화합을 꾀하고 노동의 피로를 풀어 주는 잔치라고 할 수 있다.
[현황]
깽이말타기는 예부터 논농사를 지었던 대구 여러 지역에서 오랫동안 행하여졌다. 대명동에서는 1980년대까지 동계(洞契)가 있어서 깽이말타기에 쓰이던 동네 풍물을 관리하고 운영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도시화와 농토의 변천, 인구의 이동 등으로 깽이말타기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