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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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管體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웅호 |
[정의]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조직된 조선 전기의 지방 군사 조직.
[개설]
1457년에 출현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명문화된 조선 전기의 지방 군사 조직으로, 주진(主鎭)-거진(巨鎭)-제진(諸鎭)의 체계로 이루어졌다.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영역을 포함한 과천현(果川縣)과 금천현(衿川縣)은 제진에 해당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초의 지방 군사력은 국경 지대에 집중 배치되어, 외침을 받아 국경 일대가 무너지면 내륙 지방은 무인지경이 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진관체제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팔도 모두에 주진, 거진, 제진을 두어 내륙 지방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한편 군사적 통일성을 도모하였다.
[관련 기록]
『경국대전』 4권, 병전(兵典), 외관직(外官職) 조에 도별로 진관과 그에 속한 고을명이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내용]
1457년(세조 3) 군익도(軍翼道) 체제를 진관체제로 바꾸었다. 그동안 지방군 파악 단위였던 도(道)가 행정 구역의 도와 혼동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진(鎭)으로 바꾸어, 군사적 성격을 분명하게 하였다. 진관체제는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의 주진 아래에 몇 개의 거진을 두고 거진의 첨절제사(僉節制使)가 여러 진, 즉 제진을 통할하게 하며, 제진의 절제도위(節制都尉)나 만호(萬戶)는 그 진을 중심으로 외적 방어를 책임지는 체제였다. 조선 전기 경기 지역에는 광주(廣州) 진관, 양주(楊州) 진관, 수원(水原) 진관, 장단(長湍) 진관이 있었으며, 제진에 해당하는 과천현과 금천현은 각각 광주 진관과 수원 진관의 지휘를 받았다. 과천현감과 금천현감이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 자격으로 해당 군사를 지휘했다.
[변천]
소규모 외적 방어에 적합했던 진관체제는 16세기에 야인과 왜구의 대규모 침입이 있게 되자, 도내 병력을 약속된 지역에 집중시켜 방어하는 제승방략(制勝方略) 체제로 바뀌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