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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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 進上- 巴水-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
집필자 | 임영도 |
[정의]
나라님께 바치는 파수 곶감에 얽힌 전설, 곶감의 유래, 곶감의 생산 과정과 효능 등에 대한 이야기.
[감에 대한 기록]
한국에서 감에 대한 기록은 1138년(고려 인종 16) 때에 '고욤'에 대한 것이 최초라고 전한다. 또한 고려원종[1284~1351] 시기에 원(元) 나라에서 수입된 『농상집요(農桑輯要)』에도 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성종 때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감을 중추절의 제물로 사용한다는 기록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례를 지낼 때,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부터 감은 사람들에게 애용되었던 과일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1682년(숙종 8) 조선에서 중국으로 보낸 예물목 중에도 감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정조가 등극하기 전인 1776년(영조 52)에 각종 공선 진상품의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편찬했던 『공선정례(貢膳定例)』에도 "곶감[乾枾子]·감[枾]은 경기도[강화 도호부, 남양 도호부], 경상도[사천현, 산음현, 삼가현, 의령현, 진주목, 창원 도호부, 칠원현, 하동현, 함안군]에서 조정에 진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실학자 정동유(鄭東愈)가 1806년(순조 6)에 편찬한 『주영편(晝永編)』에 "종묘의 제사 때 진상했던 계절 식품으로 곶감을 기록했다."고 한 것을 비롯하여 『규합총서(閨閤叢書)』, 『진연 의궤(進宴儀軌)』,『진선 의궤(進饌儀軌)』, 『본초 비요(本草備要)』 등에도 감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특히 『본초 비요』에는 "감을 깎아 말린 곶감은 숙혈[피가 머무는 것]을 없애고, 폐열·혈토·반위[구역질]·장품[창자 꼬임]과 치질을 다스리는 데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파수 곶감에 대한 전설]
파수(巴水) 곶감은 함안 수시(咸安水枾)[물감]라는 특유의 감 품종을 주재료로 하여 감의 씨가 적고 당도가 높으며, 육질이 부드럽고 쫄깃하여 조선숙종 때부터 조정에 진상되었다고 전한다. 함안 파수 곶감과 관련해서는 일찍부터 이 지역에 「임(林) 효자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함안의 파수 마을에는 옛날부터 은진 임씨(恩津林氏), 남양 홍씨(南陽洪氏), 성산 이씨(星山李氏)가 대성(大姓)을 이루며 살았다. 옛날에 임씨(林氏) 집안에서 나이가 제일 많고 인품과 덕망을 두루 갖추어 이웃 마을에까지 널리 알려져 존경을 받은 학덕이 높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을 집안에서는 문장(門長)이라고 불렀다. 그런 임씨 집안의 문장이 아주 위중한 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자리보전을 하며 병석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문중(門中)에서는 온갖 약을 쓰고 명의(名醫)를 불러 보았다. 하지만 그의 병세는 조금도 차도가 없고 나날이 병증이 더해 가고 있어 온 집안은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문장의 아들은 효성이 지극하여 험한 여항산을 헤매 다니면서 좋다는 약초(藥草)를 모두 캐어 아버지의 병을 보살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며 안타까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평소와 같이 약초를 구하기 위하여 여항산을 올라 헤매어 다녔다. 어찌 된 일인지 그날은 약초를 한 뿌리도 캐지 못하였다. 날이 저물어 집에 계시는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정신없이 산을 내려오다가 그만 실족(失足)하여 높은 벼랑에서 떨어져 기절을 하고 말았다.
한참 후에 누군가가 호통을 치는 바람에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그곳에는 수염이 기다란 백발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노인은 "이놈아! 병중의 아비를 위해 약초를 캐러 온 녀석이 약초는 구하지 못하고 누워서 낮잠만 자는가?" 하며 호통을 쳤다. 아들은 아픔도 잊고 벌떡 일어났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가친(家親)이 와병(臥病) 중이나 소자(小子)가 불효하여 완쾌할 방도를 모르옵니다. 부디 신령님께서 그 비법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애원하였다. 백발의 노인은 지극한 효심에 감동하여 절벽을 가르키면서 "저기 붉은 열매를 깎아 말린 후 따뜻한 물에 녹여 너의 애비에게 먹이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절벽을 올려다보니 과연 낭떠러지에 붉은 과일이 열려 있었다. 아들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 생각하며 절벽을 기어 올랐다. 그러나 험준한 절벽을 오르다가 떨어지고 또 떨어지기를 거듭하였다. 하지만 오직 부친의 병환만을 생각하며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그 열매를 따게 되었다. 아들은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 정성껏 그 붉은 과일을 깎아 말린 후, 물에 녹여서 그것을 아버지에게 먹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부친의 병은 언제 앓았느냐는 듯이 쾌차하게 되었다.
임 효자는 약제로 쓰고 남은 그 붉은 열매의 씨를 땅에 심었으며, 이듬해 싹이 트고 나무가 무럭무럭 자랐다. 몇 해가 지나자 나무에 열매를 맺더니 가을이 되자 붉게 익더라는 것이다. 그 붉은 열매가 지금의 감이며, 그 열매를 깎아 말린 것이 곶감의 시초였다고 한다.
[파수 곶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일반적으로 농촌 마을은 가을이 찾아오면 들판에는 잘 익은 벼들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곳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함안의 파수 마을을 지나면 또 다른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여느 마을과는 달리 곶감의 산지답게 함안면 곳곳에 곶감의 재료로 쓰이는 감을 맺는 감나무가 가로수로 식수되어 있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 가로수는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든 잎과 빨갛게 잘 익은 감들이 어우러져 마치 꽃을 피운 듯하다.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는 해발 700m가 넘는 여항산(餘航山) 자락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다. 이곳은 공기가 맑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일교차가 커서 곶감 만들기에 안성맞춤인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을이 되면 이 지역 농가에서는 재빠르게 벼 수확을 마치고 곶감 만들기 준비로 분주하다. 곶감은 원재료인 생감의 수확에서 완성된 상품으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공정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예전에는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쳤으나, 요즘은 일부 공정이 기계화로 전환되면서 노동력이 절감되고, 생산량 또한 많이 늘어나고 있다.
옛날 속담에 "가을철에는 부지갱이도 날뛴다."는 말이 있다. 함안 파수 마을의 가을 역시도 온 가족이 모여 곶감 만들기 작업에 정신이 없다. 전통 방식으로 곶감을 만드는 것은 원재료인 생감을 수확하는 것에서 곶감을 만들어 출하하기까지 모든 공정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인근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자녀들은 퇴근 후에 고향 집에 들러 야간 작업을 한다. 또한 먼 곳으로 나가 생활하는 사람들도 주말이면 누구네 집 자녀 할 것 없이 대부분이 고향 집을 찾아 일손을 보태고 있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생감을 수확해야 한다. 파수 사람들은 24절기 중의 상강(霜降)[보통 11월 초·중순 무렵]이 지나고 나면 함안 수시라는 품종의 생감을 수확한다. 생감을 수확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만약에 감을 수확하다가 상처가 생기면 처음부터 곶감 제작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높은 감나무에 매달린 생감은 일일이 길다란 장대를 이용해 한 개 한 개씩 따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 달린 감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몸무게가 적은 사람이 연약한 감나무에 올라 위험한 곡예를 해야만 한다. 나무에 올라 평소에 움직이지 않던 근육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생감을 수확할 때도 파수 곶감만의 원칙이 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파수 곶감은 꼭지 부분을 잘 살펴보면 'T'자 모양으로 꼭지가 만들어져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곶감을 만들 때 껍질을 깎은 감을 긴 꼬챙이에 끼우거나 혹은 꼭지 부분을 실로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건조를 시킨다. 하지만 함안 파수에서는 새끼 모양으로 꼬아 만든 줄[감 고리]의 양쪽 끝을 이 "T"자 모양의 꼭지에 끼워서 건조를 시켰다. 이렇게 하면 많은 양의 감을 긴 나무 장대에 차례차례 걸칠 수 있어 좁은 공간에서도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감을 건조할 때 별다른 고리가 없던 시절에 자연 그대로의 소재를 잘 살려 이용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지금도 파수 지역에서는 감을 수확할 때 여전히 하나씩 꼭지 부분의 'T'자 모양을 살려서 작업을 하고 있다.
감나무에서 수확한 생감은 저온 창고에 넣어 손상을 방지하면서 곶감 깎기를 시작한다. 먼저, 생감의 꽃받침 부분을 정리하고 껍질을 깎는다[剝皮]. 예전에는 생감을 깎는 것은 모두가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요즘은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고 제작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 자동 박피기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이다. 껍질을 깎은 감은 꼭지 부분을 하나하나 감 고리에 끼워 훈정(薰錠)을 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덕장(悳場)에 걸어 약 45일 정도 건조의 시간을 가진다.
곶감 건조를 시작한 지 약 30일 정도가 경과하면 이번에는 '감 만지기'를 해 준다. 이 과정을 통해서 감 내부의 타닌 성분이 포도당으로 바뀌어 당도가 높아지고, 곶감 속에 딱딱하게 뭉쳐진 부분을 부드럽게 만들어 겉은 쫄깃하면서 속이 부드러운 맛있는 곶감이 완성된다. 완성된 곶감은 대부분 각 농가에서 직접 주문 제작한 여러 가지 형태의 선물용 곶감 상자에 포장하여 전국의 대형 마트나 백화점을 통해서 판매한다. 또한 일부 생산 농가에서 직접 실속형인 벌크(bulk)로 판매하기도 한다.
[파수 곶감은 왜 좋은가]
파수 곶감은 당도가 높고 육질이 부드러워 수정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급 재료로써, 다른 곳의 곶감은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파수 곶감이 왕실의 진상품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은 감히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장 시설이 좋지 못한 이전에는 음력 설날 전에 상품의 출하가 완료되어 겨울의 별미로 여겨졌다. 요즈음은 저온 저장 시설을 이용해서 일 년 내내 그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파수 곶감이 만들어지는 함안면 파수 일대는 해발 770m 여항산 자락에 위치하여 공기가 맑고 안개가 잘 끼지 않아 곶감 건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산에서 불어오는 자연 바람을 이용하여 건조시키기 때문에 곶감의 표면은 쫄깃하면서도 그 속은 잘 익은 홍시를 먹는 듯하다. 또한 아침저녁의 일교차가 커서 곶감이 건조되는 동안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곶감의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충분한 일조량과 비옥한 토질에서 잘 자란 함안 수시는 육질이 부드럽고 쫄깃하며, 씨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파수 곶감은 오랫동안 보관해도 굳어지는 일이 없고 말랑말랑하다. 그래서 더운 물에도 꿀타레처럼 잘 녹아 수정과의 원료로 일품이어서 조선숙종 때부터는 궁중의 진상품으로 올려졌다고 전해진다.
곶감은 앞에서 언급한 『본초비요』나 「임 효자 전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효능이 한약재로도 쓰일 만큼 탁월하다. 곶감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여 겨울철 건강 보조 식품으로 감기 예방에 좋으며, 타닌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설사를 멎게 하고 모세 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고혈압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전한다. 또한 곶감 표면에 형성되는 하얀 가루는 기침을 많이 하거나 가래가 생기는 등 만성 기관지염 치료에 쓰이며, 음주 전후 곶감 달인 물을 마시면 숙취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더 맛있는 파수 곶감을 위해서는]
곶감 건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충분한 일조량과 바람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지구 환경의 변화로 겨울비가 잦아지면서 곶감 건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생산 시설을 현대화하는 등 시설 개선으로 더욱 위생적이고 맛있는 곶감을 생산하려는 농가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이전에는 함안 파수 지역을 중심으로 함안 수시만을 이용하여 곶감을 만들었지만, 근래에는 농한기 농가 소득의 증대를 이유로 함안 수시 이외에 인근의 다양한 품종의 감을 원료로 곶감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상품과 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함안에서만 생산되는 특유 품종인 함안 수시의 특화된 종(種)을 유지해야만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파수 곶감 본유의 맛을 보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