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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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獐鶴里獐項- |
이칭/별칭 | 장학리 장항 지석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영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1년 11월 12일~1981년 12월 10일 - 장학리 장항 고인돌 떼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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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시기/일시 | 1984년 - 장학리 장항 고인돌 동복댐 건설로 수몰 |
소재지 | 장학리 장항 고인돌 떼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 장항마을 |
출토 유물 소장처 | 장학리 장항 고인돌 떼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 광주 박물관 |
성격 | 고인돌 |
양식 | 기반식 |
크기(높이,지름) | 3.5~4.0m[길이]|1.9~2.4m[너비]|0.6~0.7m[두께]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 장항 마을에 있었던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위치]
장학리 장항 마을은 순 우리말로 노루목이라 부르던 곳이며, 수몰 전에는 이서 적벽[화순 적벽]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동복천이 심하게 곡류되면서 반월형의 충적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충적 평지에 고인돌 4기가 있었으나 군집을 이룬 3기만 발굴하였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동복댐 조성은 보성강 상류인 동복천을 이용해 원래 있었던 댐을 확장해 광주광역시의 부족한 식수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몰이 불가피한 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 중 고인돌만 발굴 조사 대상이 되었다. 장학리 장항 고인돌 떼 3기는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1981년 11월 12일부터 12월 10일까지 29일간 발굴 조사되었다.
[형태]
고인돌 형식은 모두 받침돌이 있는 기반식인데, 무덤방 밖 한쪽에 길이 100cm 내외의 장대석을 사용한 받침돌이 특징적이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가 350~400cm 정도로 대형에 속한다. 무덤방은 땅을 판 뒤 냇돌이나 할석을 쌓아서 만든 석곽형이다. 무덤방의 크기는 길이 1.7~1.9m, 너비 0.47~0.51m 정도로, 성인을 신전장할 수 있는 규모이다.
[출토 유물]
부장 유물은 단경의 적색마 연호와 채문 토기, 어망추가 있고, 발굴 과정에서 석검 편, 무문 토기 편이 다량 출토되었다.
[현황]
장학리 장항 고인돌 떼는 발굴된 3기의 고인돌 이외에도 100m 쯤 떨어진 곳에 1기가 더 있고, 장항 마을 내에도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었다. 마을 옆 구릉에도 8기가 있고, 동복천 건너편의 보산 마을 내와 그 주변에도 40여 기가 분포하여 모두 60여 기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발굴된 3기의 고인돌은 발굴 후 현장에 그대로 남겨두어 현재 수몰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장학리 장항 고인돌 떼는 덮개돌의 규모나 무덤방의 크기가 대형에 속한 편이며, 잔존 상태도 매우 양호하게 남아 있었다. 특히 부장 유물에서 2호 무덤방 바닥에서는 단경의 채문 토기와 이를 덮었던 납작한 냇돌, 토기 안에 들어있었던 어망 추 1점이 함께 나와 주목된다. 또한 이 유물이 부장된 곳은 판석으로 깔고 한 단벽 밑에 길이 20cm 정도 크기의 냇돌 4매를 깐 그 위에 유물을 안치한 것으로 추정되어 유물 부장 공간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특이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 1호와 2호가 평행한 석실로 두 무덤방 내에서 채문 토기가 각각 다른 방향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부장 양상은 고인돌의 부장 위치와 풍습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