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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319
한자 龍池里
영어공식명칭 Yongji-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용지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용지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용지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용지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가구수 263가구
인구[남/여] 474명[남 241명|여 233명]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용지리(龍池里)밀양시 부북면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안인리, 서쪽으로 운전리, 북쪽으로 춘화리, 남쪽으로 교동내이동과 접하고 있다.

[명칭 유래]

용지리는 용포(龍浦)와 지동(地洞)이 합쳐진 마을로, 마을 이름 또한 두 마을 이름이 합쳐진 데서 유래하였다. 용포마을은 용심천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마을 이름은 용심천에서 용이 상천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지동마을은 옥교산 남쪽에 자리한 마을이며, 고려시대부터 용가역(龍駕驛)이 있었던 역촌(驛村) 마을이다. 못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동(地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895년 대구부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으며,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지리 일부가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용지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으로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용지리가 되었다.

용포마을과 지동마을의 중간 정도 자리에 고려시대에 형성된 역(驛)이 있었다. 역참(驛站)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고려시대의 역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또한 지동마을 서남쪽에 있는 못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관개수로로 활용되다가, 퇴로못[가산지]의 수리 구역에 편입되어 못의 필요성이 없어지자 6·25전쟁 시에는 임시육군병원의 부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공장 부지가 되어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지동마을 서북쪽에 옛날 큰 부자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우물과 맷돌바위 등 관련 유적이 남아 있다.

[자연환경]

용지리의 북쪽에 위치한 화산[191.9m]을 중심으로 북동부 지역은 산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제대천이 흘러 밀양강으로 합류하는 지역과 인접하고 있어, 남서 지역을 중심으로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263세대, 474명[남자 241명, 여자 2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용포마을은 107세대, 199명[남자 100명, 여자 99명], 지동마을은 156세대, 275명[남자 141명, 여자 13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용지리부북면 행정복지센터의 북동쪽, 밀양시청밀양종합운동장의 북쪽에 위치하여 중심부와 인접한 지역이다. 함안조씨, 전주유씨, 달성서씨, 영월엄씨와 밀양박씨의 집성촌이며, 쌀농사가 주업이며 밭작물로는 대추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용포저수지, 춘례광산, 장자골, 민등골, 금강골, 안용골, 딱지골 등의 계곡이 유명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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