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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720
한자 李章守
영어공식명칭 Lee Jang So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연표보기 - 이장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이장수 밀양 3·13 만세운동 주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4일 - 이장수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징역 6월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0월 - 이장수 의열단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2월 - 이장수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 지원
몰년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 이장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이장수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내일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지도보기
활동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장수(李章守)[1897~1960]는 1897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윤세주윤치형이 밀양으로 돌아와 전홍표를 만나면서 서울의 시위 상황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장수윤세주, 윤치형, 김병환, 정동찬, 김소지, 박소종, 정동준, 김상이, 박만수, 박상오, 최종관, 윤보은 등과 함께, 3월 13일 밀양 읍내 장날을 기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밀양면사무소와 부북면사무소에서 등사판을 몰래 가져와, 아북산에 올라가 병풍을 둘러 불빛을 가리고는, 밤을 새워 「독립선언서」 수천 매와 태극기 수백 개를 제작하였다.

3월 13일 정오를 지나 밀양공립보통학교 앞에 수천 명의 군중이 운집하자, 윤세주가 「독립선언서」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하였다. 때 맞추어 이장수 등 청년들은 「독립선언서」를 뿌리고 태극기를 배포하였다. 이윽고 이장수 등 주동 청년들과 군중들이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 만세”를 외치니, 밀양 장터에는 삽시간에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위행진이 시작되자 이장수는 선봉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부산에서 급파된 일본 헌병과 수비대 및 밀양 현지의 헌병 경찰이 총검을 휘두르는 진압을 자행하면서, 시위 대열은 해산되고 주모자는 검거되었다.

이장수도 다른 청년들과 함께 검거되어,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이장수는 항일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1920년 10월 이장수고인덕, 최수봉 등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고, 1920년 12월 의열단이 추진한 밀양경찰서 투탄의거를 지원함으로써, 최수봉의 폭탄 투척을 뒷받침하였다. 이장수는 1960년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이장수에게 1995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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