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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028
한자 望修齋
영어공식명칭 Mangsuja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구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류화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망수재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0년 10월 - 이중구 「망수재기」 저술
현 소재지 망수재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구기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망수재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구기리
성격 재사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청도김씨 문중
관리자 청도김씨 문중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구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재사.

[개설]

망수재(望修齋)는 군수(郡守) 김극유(金克裕)[1567~?]의 묘소 아래에 있는 재사(齋舍)이다.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1190~1266]의 충효(忠孝)를 기리기 위하여 지은 남계서원(南溪書院) 가운데 있는 쌍수당(雙修堂)을 우러른다는 뜻으로 재사의 이름을 ‘망수(望修)’라고 하였다. 김극유의 임진왜란 당시 전공은 일찍부터 알려졌지만, 300여 년이 지나도록 사당을 세워 모시지 못하다가 8세손 김두철과 9세손 김봉곤이 문중과 논의하여 1920년에 비로소 창건하였다고 한다.

김극유는 성종 대에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로 남하한 참봉(參奉) 김백일(金百鎰)의 현손이다. 일찍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전관(宣傳官)으로 선조를 평양까지 호종(扈從)하여 선락장군(宣略將軍)에 제수되었다. 서울에 있는 적을 탐색하면서 군사들에게 음식을 베풀어 위로한 공이 알려져 양산군수에 제수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적이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의 만덕령(萬德嶺)을 넘으려 하자, 격문을 통하여 의병을 모아서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宣武原從) 공신에 녹훈되었다. 1920년 10월 여강(驪江) 이중구(李中久)가 쓴 「망수재기(望修齋記)」로 김극유의 전공과 망수재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다.

[위치]

망수재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구기리 고장동에 있다. 고장동(古莊洞)은 청도면 구기리 당숲동의 남쪽에 있으며, 마을의 동북쪽 주변에 있는 전답에 긴 굴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고장골 또는 유장동(有長洞)이라고 불린다.

[형태]

망수재는 정면 네 칸, 측면 한 칸으로 되어 있으며, 동서 양편을 실(室)로 하고, 가운데를 당(堂)으로 하였다.

[현황]

망수재는 후손들의 관리로 잘 보존되고 있으며, 마을을 조망하고 있는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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