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205
한자 丹場里
영어공식명칭 Danj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단장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단장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단장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단장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가구수 219가구
인구[남/여] 394명[남 209명|여 185명]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단장리단장면의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태룡리, 서쪽으로 미촌리, 남쪽으로 안법리와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 단장천이 흘러 산외면 희곡리, 금곡리와 경계를 이룬다. 자연 마을로는 단장과 창마가 있다.

[명칭 유래]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밀양]에 “도기소(陶器所)는 부 동쪽 단장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단장리’의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단장리’ 이름은 단봉정(丹鳳亭)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명으로서 ‘단장리’는 1906년(광무 10)에 구동창리(舊東倉里)와 단전리(丹田里)가 합쳐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년]와 『경상도읍지』[1832년]에 ‘구동창리’가 있으며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에 ‘단장리’로 수록되어 있다. 단장리가 당시 단장면 일대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면 지명으로 사용되었다. 1906년에 단장리 통합 이후 면 소재지가 되었다. 1917년 단장면 면 소재지는 태룡리로 이전되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단장리는 그대로 유지되어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단장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단장리가 되었다.

단장리의 취락은 단장천 유역의 산록의 말단부에 있는 독산(獨山)인 경주산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중심 마을인 단장은 독산인 경주산의 동남쪽에 있다. 19세기에 여주이씨, 김해허씨, 함안조씨를 비롯한 여러 성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창마마을은 경주산의 북동쪽에 있다. 밀양부의 외동창(外東倉)이 있었으나, 외동창이 금곡리로 이전한 후 ‘구동창(舊東倉)’으로 불렀다. 창마마을에는 단장천의 남쪽 제방을 따라 숲이 조성되어 있다. 단장천 남쪽 제방의 숲은 하천으로 인한 침식을 막아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림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제방이 축조되어 유원지로 이용된다.

[자연환경]

단장리 동남쪽의 가래봉[502.2m]은 태룡리안법리와의 경계를 이루며 서쪽의 미촌리 사이에는 계령산[389.7m] 줄기가 지난다. 중앙에 경주산(競珠山)[212.6m]이 있다. ‘경주’ 지명은 용이 구슬을 다투어 뺏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위의 용암산(龍岩山)과 용회산(龍回山) 지명은 경주산의 뜻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경주산(慶州山)’이라고도 표기된다. 옛날에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마고 할미가 경주에 갖다 놓기 위하여 산을 짊어지고 가다가 밧줄이 끊어져 떨어뜨린 데서 경주산이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을 가운데를 큰골천이 흘러 단장천에 유입한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219가구, 394명[남자 209명, 여자 18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단장리의 농업은 경주산 주위의 농경지에서 벼농사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마을 형성의 역사가 오래되어 옛 고가가 남아 있다. 조선 말 유학자였던 허채(許埰)[1859~1935]가 김해에서 밀양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밀양 단장면 허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와 와 이후 강학을 위해 지은 밀양 단장면 주산서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가 있다. 지방도 제1077호선단장리 가운데를 지나며 단장천 유역에는 단장숲유원지가 있다. 과거에 면 소재지가 있던 부지에는 홍제중학교가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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