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549
한자 安鍾悳
영어공식명칭 Ahn Jongdeok
이칭/별칭 태로(兌老),석하(石荷),안언택(安彦澤)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1년연표보기 - 안종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82년 - 안종덕 증광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82년 - 안종덕 6품직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6년 - 안종덕 문경현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 안종덕 사망
출생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관인
성별
본관 광주
대표 관직 중추원의관|전라남도순찰사|경상북도선유사

[정의]

개항기 밀양 출신의 관인.

[가계]

안종덕(安鍾悳)[1841~1907]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태로(兌老), 호는 석하(石荷)이다. 아이 때 이름은 안언택(安彦澤)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냉와(冷窩) 안경점(安景漸)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안형중(安珩重)이며, 할아버지는 안효상(安孝庠)이다. 아버지는 안정원(安貞遠)이고, 친아버지는 안문원(安聞遠)이며, 친어머니는 민양로(閔良魯)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부인은 송진봉(宋鎭鳳)의 딸 여산송씨(礪山宋氏)이다. 슬하에 3녀를 두었다. 동생은 안종헌(安鍾憲)·안종필(安鍾弼)·안종철(安鐘哲)이다. 안종헌의 아들 안긍수(安肯洙)를 양자로 들여 대를 이었다.

[활동 사항]

안종덕은 1841년(헌종 7)에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1882년(고종 19) 증광시 진사 3등 118위로 급제하였고, 이도재(李道宰)의 천거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1882년 영의정 홍순목(洪淳穆)의 천거로 6품직에 올랐다. 1886년(고종 23) 문경현감(聞慶縣監)으로 임명된 다음부터 1906년(고종 43)까지 경상도의 양산군수(梁山郡守)·울산부사(蔚山府使)·흥해군수(興海郡守)·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시흥직산안핵사(始興稷山按覈使)·전라남도순찰사(全羅南道巡察使)·청송군수(靑松郡守)·경상북도선유사(慶尙北道宣諭使) 등을 역임하였다. 문경현감으로 재직할 때는 10조목의 「향교교폐절목(鄕校矯弊節目)」을 지어 향교의 폐단을 바로잡았다. 1902년에는 김일손(金馹孫)과 조헌(趙憲)에 관련된 인척과 문인을 예우하도록 건의하기도 하였다.

1903년 적신(賊臣)들이 백동화(白銅貨)를 주조(鑄造)하면서 생긴 폐단이 극심하여지자 안종덕은 시정책(時政策)을 건의한 상소를 올렸다. 1904년 한일협약의정서(韓日協約議定書) 체결을 반대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고 조인(調印)에 참여한 이지용(李址鎔) 등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국가재정사무를 탁지부에 통합하여 일원화할 것을 고종에게 상소하였다. 안종덕은 1907년(순종 즉위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안종덕은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인이며, 조선시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뒤를 잇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종덕의 저술로는 『석하집(石荷集)』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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