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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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峴石城 |
영어공식명칭 | Seonghyeon Stone Fortress |
이칭/별칭 | 지성리 산성,성뫼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산13-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강원종 |
현 소재지 | 성현석성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산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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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석성 |
양식 | 테뫼식 보루 석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300m 이하[둘레]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건립 경위]
성현석성(城峴石城)은 "임진왜란 때 합천인 정인홍이 창의병을 이끌고 무풍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곳 저전봉에 성을 쌓고 의병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였다"는 구전을 비롯하여, 도적 떼의 소굴이었다는 설과 곡식을 지키기 위해 쌓았다는 등의 전설들이 전해져 온다. 그러나 성현석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역은 신라 시대 무산현(茂山縣)이었고, 삼국 통일 이후에도 무풍현(茂豊縣)으로 개칭되어 신라의 영역에 속해 있던 점으로 보아, 성현석성은 정황상 신라 시대와 깊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신라 산성의 특징 중 하나인 보축 성벽(補築城壁)이 남아 있는 점에서도 연관 지어 볼 수 있겠다. 성현석성은 무주군 무풍면에서 김천군 방면으로 향하는 초입부에 자리하고 있어서 무풍면의 길목을 감시하기 위해 삼국 시대에 축성된 보루(堡壘)일 것으로 추측된다.
[위치]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산26번지 일원과 지성리 산13-1번지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성뫼[588.5m]의 정상부 주위를 두르고 있는 테뫼식[산봉우리들을 둘러쌓아 성을 축조하는 방식] 보루 석성이다.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18-1번지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무풍 사거리에서 지방도 제108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600여 m 가면 '지성리'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이정표를 따라 500여 m 가면 서수골 마을이 나오고, 서수골 마을에서 북쪽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600m 정도 오르면 동쪽으로 샛길이 나온다. 이 샛길을 따라 산 정상부에 오르면 성현석성의 남쪽 부분에 다다른다. 이 산은 마을에서 성뫼라고 불리우며, 지도상에도 똑같이 표기되어 있다. 산 정상부에는 중계탑이 우뚝 세워져 있어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된다. 한편 성뫼의 아래에는 무주군~김천시를 잇는 국도 제30호선의 터널이 관통되어 있다.
[형태]
성뫼 정상부를 두른 테뫼식의 석성으로 성벽의 대부분은 무너져 있다.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둘레는 300m 이내로 추정되며, 성벽은 할석을 이용하여 2단으로 쌓여 있는데, 아래쪽의 성벽은 위쪽의 성벽을 보강하기 위한 보축 성벽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보축 성벽은 신라 성벽의 특징 중 하나로 축성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현황]
성뫼 정상부의 평탄면에는 손씨 민묘가 조성되어 있으며 정상부의 서쪽에는 중계탑이 세워져 있다. 성은 정상부와 가까운 해발 580m상에 축조되어 있으나 대부분 무너졌으며, 남쪽 경사면에서 일부 확인된다. 남쪽 경사면의 성벽은 급한 경사면에 할석을 이용하여 축성되어 있는 외벽이 2단으로 쌓여 있다. 하단부의 성벽은 상단부의 성벽보다 경사가 완만하게 편평한 할석을 4단~5단 정도 쌓았다. 상단부의 성벽은 거의 수직에 가깝도록 쌓았으며, 6단~7단 정도 남아 있다. 하단부의 성벽은 상단부의 성벽을 보강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